어린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까. 처음으로 비디오 테잎을 손에 쥐어보았다. 생일선물이었나 싶은데, 그 비디오테잎이 바로 ‘라이온킹’이었다. 라이온킹을 만든 회사가 ‘디즈니’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도, 라이온킹의 OST를 부른 사람이 ‘엘튼존’이었다는 사실도 한참이나 나이가 든 후에야 알았다. 한국말 더빙이었다. 외국어 자막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 들으면 오글거릴 수 있겠지만, 각 캐릭터 성우들의 목소리와 한국어로 번역된 각 노래의 가삿말을 아직 흥얼거릴 수 있을만큼 꽤나 생생히 기억한다. 몇번이나 보았을까. 라이온킹의 처음과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Circle of life’라는 곡이 참 좋았다. 삶의 순환이라는 노랫말이 줄거리와 기가막히게 연결된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주인공 심바, 소꿉친구이자 배우(사)자 날라, 아버지 무파사, 삼촌 스카, 티몬과 품바, 사라비 각 케릭터의 대사와 행동 눈빛까지도 참 기억이 난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이었음에도. 물론, 각각이 갖는 의미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비디오 플레이어도, 라이온킹 테잎도 이제는 어디갔는지 찾을 수 없지만, 그때 받은 라이온킹은 아직도 선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2015년, 결혼을 앞두고 신혼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혼여행지에 영국이 포함되어 있었고, 뮤지컬을 한편 볼 계획이었다. 소심한 나는 비교적 저렴한 오페라의 유령 정도를 볼 생각이었지만, 대범한 아내는 대체 무슨 소리냐며 라이온킹 정도는 봐줘야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했다. 예약은 나의 몫이었는데, 예약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계획한 것보다 좋은 자리(즉, 비싼 자리)를 예약하고 만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파혼의 위기를 맞았지만 사랑으로 잘 넘겨내었다. 돌이키면, 그 실수는 참 행운이었다. 더 좋은 자리에서 라이온킹을 볼 수 있었으니.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뮤지컬 시작에 ‘Circle of life’와 함께 모든 동물들이 나와 심바의 탄생을 축하한다. 여기저기서 동물들이 나오고 심바가 천천히 들려 올라오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눈물은 줄줄 나오는데,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눈을 부릅뜨고 복도를 지나는 동물들을 쳐다보았다. 뒷자리에 앉은 영국 할머니도 울고있었다.

그 감동을 안고,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투어표를 감사하게도 구할 수 있었다. 정말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두근두근 신나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CIrcle of life’가 울려퍼지는 오프닝에 눈물이 줄줄 났다. 저 들려올려진 심바는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할지 알고 있을까.(사실 인형이었고, 동일한 인형은 4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이미 결말을 알지만, 그 과정을 한번더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아주 단순 비교를 하면, 영국에서 본 공연이 더 우수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영국에서 본 배우들이 그대로 캐스팅되었고, 옆에서 북치는 아저씨들도, 마치 사람같은 치타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두가지 큰 차이가 있었다. 음향과 동물의 숫자였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내 귀 문제인가, 혹은 자막이 몰입을 방해하나 싶었는데 대사치는 소리가 뭉툭했다. 소리는 느낌이라 치더라도, 오프닝에 등장하는 동물의 수는 눈에 띄게 적었다. 무대에서 오는 차이지 않을까. 영국의 극장을 생각해보면, 로비가 매우 좁았는데 시골에 있는 버스터미널 정도로 기억한다. 바글바글했다. 반면에, 무대는 넓고, 복도 경사는 완만했다.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기에 좋은 무대, 동물들이 등장하기 좋은 복도였다. 물론 전용 극장이니 비교할 바는 아니다. 더 할말은 많으나 여기까지.

좋은 공연이었다. 소리가 더 뭉툭하다 하더라도, 동물의 숫자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그 오프닝을 보면 나는 다시 눈물을 흘릴것 같다.

연극_ 장수상회

2017.09.30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추석 연휴를 맞아, 엄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장수상회를 보러 갔다.



오늘의 라인업은 위와 같았다.

신구 선생님과 손숙 선생님이 나오는 라인업이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신구 선생님보다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다.

다른 라인업의 배우분도 좋았을 것 같다. 오히려 더 연극에 포커스 된 분이어서 감동이 더해졌을 수도..

여하튼 오늘은 신구 아저씨이다.

이름 참 좋다. 새것과 옛것이 함께 있기는 어려우니.



달오름 극장 무대이다. 시작전 한컷을 찍었다.

좌석은 이층 맨 뒤였다. 처음에는 너무 뒤인가 싶기도 했다.

연극을 볼수록 무대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이고 가운데여서 더 좋았다.


공연을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연극무대는 작고 간결하다.

무대장치와 부대효과를 많이 사용하는 뮤지컬과 대비대기에 그렇게 느꼈다.

배우가 끌어가는 비중이 더 크기에 그렇겠다.

커튼콜 사진이다.

구 아저씨와 숙 아주머니의 조합은 참 좋았다.

구 아저씨의 발음과 발성이 너무 또렷히 들렸다.

숙 아주머니는 어쩜 그리 우아하신지 모르겠다. 입고 나오신 옷들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난 남자다.)

내용은 영화 장수상회와 같다.

다만 지나치지 않게, 모자르지 않게 내용을 담았을 뿐이겠다.


나도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만약,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천국에서 보내는 하루는 이 세상에서 보내는 천년과 같다는 대사가 있었다.

10년을 먼저 가더라도, 천국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보면 짝을 만날 수 있다는 대사였다.


먼저 떠난 이는 그럴 수 있겠다.

남은 이는 1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내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먼저 떠나게 되었을 때

만약, 다른 좋은 짝이 나타난다면 자유로이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엄마도, 더 늦기 전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고.

물론 반대의 경우에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엄마와 인증샷.

내가 너무 가식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ㅋ

가족과 보기에 좋았다.

웃음도 감동도 있는 연극이었다.

앞으로, 선택의 기회가 오면 뮤지컬보다는 연극을 더 보고싶다.

더 작은 무대에서.


*주차는 3,000원에 5시간이 된다.(공연 관람자에 한해)

연극보고 남산공원에 걸어 올라갔다 왔는데, 좋았다!

공연이름

윤이상 100주년 기념 콘서트


공연일시

2017.09.09


연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그리고 김수연


주최

경기도문화의전당 & 윤이상평화재단




내가 관람한 공연은 윤이상100주년기념 공연이다. 부끄럽지만, 윤이상이 누구인지  몰랐다. 아니, 알고는 있었다. 독특한 음악세계를  음악가라는 . 역사 픔을 생에 직한 인물이라는 . 대 아무한테나 맞춰 해도 들어맞을 법한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공연을 약한 이유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김수연이 연주 한다는 공연 식을 들어 예매 부랴부랴 했는데,  공연이 윤이상 100주 념공연이었다. 

 

윤이상의 음악을 들어본  있었다. '작은새' 억한다. 학부때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언급하여 호기심에 들었다.

바이올린 곡인데, 활을 한번 그을 때 새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듯한 음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소는 예당 콘서트홀이었다. 아내와 함께, 30분 정도 넉넉하게 일찍 도착하여 자리를 잡았는데, 시작 15분 전까지도 사람이 별로 안들어왔다. 시작 10분 전이 되자 사람들이 조금씩 차기 시작했다. 우리의 자리는 2층 중간이었다. 3층은 거의 비어있었고, 생각보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관람객들에 기억나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홀로 오신 백발의 노인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간혹가다 독일인처럼 보이는(서양인인데 왠지 독일인스럽게 생긴) 노인 분들도 계셨다.


오프닝

한 편의 영상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윤이상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영상이었다. 윤이상을 설명하는 키워드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사진과 음성이 더해진 영상이었다. 그의 음악세계, 그의 결백함(윤이상은 간첩 누명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동백림 사건이 그 내용이다.), 민족 화합에 대한 열망 등을 이야기했다.

아직 윤이상이 빨갱이네 어쩌네 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사실을 밝히어 적는 것이 중요하고, 판단은 시대와 또한 개인 몫이다. 어려운 시대의 피해자들, 그 중 한 음악가. 내 생각은 이뿐이다.



1부_경기필

<예악>_윤이상

<론타노>_리게티 죄르지

대관현악을 위한 환상적 무곡<무악>_윤이상

나는 음악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다. 조예 있으신 분들이 읽으면 헛소리일 수 있으나, 짧은 감상 정도를 남겨보려 한다.

<예악>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세가지이다. '박'(제례악에서 보이는 막대기 여러개가 붙어있는듯한 타악기), 첼로의 현 튕기기, 방울.

배경음악 같기도, 전시상황 같기도 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개인적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OST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을 칠 때마다 전투가 시작되고 끝나지만, 여전히 전쟁의 분위기는 깊어가고 전투는 스멀스멀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첼로 현을 튕기는 소리가 났다. 탁!타타탁!탁! 음가가 없는 불규칙한 소리였다. 총소리 같았다. 다시, 중간중간 방울이 울렸다. 악기 이름은 방울이 아닐 수 있다. 마치, 무당의 방울이 연상되었다. 전쟁, 암울한 상황, 총소리 가운데에 방울소리는 마치 굿 같았다. 무속신앙과 귀신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전쟁상황을 피하고 돌리려는 시도로 그 방울소리가 들렸다. 노력과 극복이라는 단어는 일부러 쓰지 않았다. 방울을 울려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상황이 나빠지지만 어두워지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방울을 드는 것밖에 없지 않았을까. 방울을 울리는 행위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저 기억될 뿐이었다.


<론타노>는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 건너 뛰고, <무악>으로 넘어간다.

인상에 남은 것은 한가지가 있는데, 바이올린 세 부류가 차례대로 음을 쌓아가며 연주하는 장면이었다.

빠른 속도로, A그룹이 a음을 긋는다. a음이 끝나기 전, B그룹이 b를 긋는다. 다시 끝나기 전 C그룹이 c를 긋고, 다음 차례는 A에게 돌아간다. 귀로 들리는 것은 그저 abc음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그 음들이 중첩되며 쌓이니 듣기에 묘히 좋았다. 나 혼자 '도레미도레미'를 반복할 수 있지만 음을 쌓을 수는 없다. 셋이 하면 가능하다. 경제적이지 않지만 그를 넘어서는 의미가 부여된다. 소리를 내는 세 그룹을 따로 눈으로 쫓다가 시선을 전체로 돌렸다. 세 그룹이 돌아가며 활을 긋는 형태에서 군무가 보였다. 곡명이 <무악>인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다.


윤이상의 곡을 고작 두곡 들었지만, 느낀바가 있었다. 재료에 맞춰 요리를 한것이 아니라, 완성된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갖다 쓴듯한 음악이었다. '내가 생각한 이 부분에는 이런 소리가 필요한데 요 악기를 이렇게 해서 표현하면 되겠다.'라는 식이다. 클래식이 아니어도, 무슨 형식이 아니어도 되는 음악이다. 첼로는 활로 켜서 음을 냄으로도 손으로 두드리거나 줄을 튕김으로도 연주된다. 그 소리를 내기 위해 반드시 타악기 중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다. 첼로여야 하는 이유가 있고, 두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반드시 첼로를 두드려야 그 소리가 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필요한 것이다. 비슷한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대체될 수 없는 소리이다. '나'는 '나'여야지 내가 된다. 세상 모든 존재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하나 하나의 소리도 마찬가지이며 그 소리가 있을 자리와 표현되는 방식까지도 그렇다. 윤이상은 그렇게 자신을 음악에 담았다. 담기는 것으로 모자라 넘쳐 흐르기까지 했다.


프로그램 북 에필로그에서 윤이상이 말했다.

"

나의 음악은 악을 멀리하고,

삶의 승리를 노래하고,

슬픈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인류사회에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의 고국의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나의 음악을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얻으시고

내가 절실히 원하는

평화적 사회와 민족끼리의 화해가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바라고

또 다 같이 노력합시다.

"




Intermission





2부_김수연 그리고 경기필 협연

L.v.Beethoven_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61

ⅰ. Allegro ma non troppo

ⅱ. Larghetto

ⅲ. Rondo-Allegro

김수연에 대해서는 딱히 할말이 없다. 그저 넋놓고 봤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봐도 별로 관심없는 나이다.

공연을 찾아본 적은 없다. 앨범 자켓 사진과 안에 수록된 연주곡으로만 김수연을 만나보았다.

바흐의 곡을 무반주로 연주한 앨범<J.S Bach:Sonatas & Partitas for Solo Violin>을 제일 좋아한다.(마치 클래식을 많이 듣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몇개 듣지 않는 앨범 중 하나이다.)


이날 연주한 곡은 이미 앨범 녹음도 이뤄진 곡이며, 수 없이 협연한 곡일 것이다. '느리면서도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자유로우며, 섬세하면서도 거칠고, 강하면서도 연약하다.'라는 이런 상투적인 말을 내가 하게될 줄이야. 그 모든것을 한번에 보인 것은 아니나, 곡을 통해 여러 모습들을 보았다. 높고 가는 음을 긋는데, 바이올린에서 빛처럼 음선이 선명하게 발사되었다. 그 많은 음들이 명확히 구분되며, 또한 흐르듯이 이어지는 연주였다. 김수연이 사용하는 바이올린은 (그 유명한)스트라디바리우스이다. 저 소리가 나오는 근원이 악기일지 실력일지를 고민해 봤지만, 그 악기를 연주할만한 실력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다.

김수연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본인이 택했든 코디의 작품이든 가을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드레스는 가을이지만 실내는 아직 가을이 아니었나보다. 긴팔의 드레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리고는 연주 사이에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적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앵콜요청이 있었다. 몇번의 요청 끝에 김수연은 '윤이상의 작은새 연주하겠습니다.' 라고 들릴듯 말듯 하게 말한 후 연주를 시작했다. 유일하게 알았던 윤이상의 바로 그 곡이었다. 잠시 잊고있던 작은새를 김수연이 데려왔다.

연주하는 그 순간, 주인공은 김수연이었다. 주인공이 앞을 보고 연주 할 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같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보였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전공하고 졸업하지만, 업으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 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말이 더 가까울까. 나도 영상을 전공했고 그 일을 진심으로 하고 싶지만 다른 분야에 있다. 내 분야에서 영상을 하고 싶지만, 말 그대로 쉽지 않다. 어렵다. 날고 긴다는 사람들, 음악을 업으로 삼을 실력자들이 악단에 선발되어 그 자리에 앉아있다. 그들이 김수연 뒷모습을 보며 앉아있다. 무슨 생각이 들까. 판단할 수 없다. 누구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없다. 그저 궁금했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빛만 보였다.


무대가 끝난 뒤 사진이다. 직원분이 공연이 끝난 뒤에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했다. 혹시나 찍어도 안되는 사진이라면 꼭 댓글이든 어떤 형태로도 알려주면 반드시 꼭 지우겠다. 가운데 보라색 드레스가 김수연이다.



무대가 끝나고

나는 매너있는 관객일까. 확답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부분에서는 매너를 지키려 노력한다. 공연 중에 기침은 할 수 있다. 생리현상인 것을 어쩌겠나. 계속할 수도 있다. 전화벨이 한번 울리는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을 한번 찍어, 찰칵 소리가 나는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이해하려 노력한다. '한번'에 한해서이다. 연속된 벨소리와 찰칵 소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소리는 났지만 쳐다도 안봤다. 그만큼 공연이 좋았다.

우스갯소리지만, 내게 몇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공연 시작 전에 EMP탄을 공연장에 터뜨려 모든 전자기기를 마비시키면 좋겠다. 물론, 공연에 필요한 장치들은 사전 보호 조치가 된다는 가정 하에. 둘째, 공연장 의자를 '스마트 의자'로 바꿨으면 좋겠다. 앉기만 하면 스마트폰이 종료되어 켤 수 없는 놀라운 기능을 가진 의자로.


그래도, 공연은 즐거웠다. 동그래지는 얼굴은 즐거울 순 없지만!






공연이름

화음 ; 젊은 예인들의 어울림 소리, 자연의 소리와 전통가락의 자유로운 조화


공연시간

2017.08.31~2017.09.28 매주 목요일 17:30


공연장소

민속극장 풍류




우리 처제는 가야금을 전공했다. 지금은 전공을 다른 의미로 살려 연주자 보다는 공연기획자로 커리어를 쌓고 있다.

이런 처제가 오랜만에 무대에 서게 되어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바로 '화음'이라는 시리즈 국악 공연이다.

약 한달간 1차례의 등용, 3차례의 지음, 1차례의 득음으로 총 5회 진행된다.

'등용'은 대학입학 전의 연주자들(프로필을 보니 다 고3이다.)

'지음'은 미래가 촉망받는 젊은 예인들

'득음'은 이미 자신의 소리를 찾은 명인 연주자들이 무대를 꾸민다.

브로슈어에는 없으나 공연 사회자의 설명과 내 이해를 더해 썼다.

참 좋은 취지의 공연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취지를 더 밝히어 적었으면 더 좋았겠다.

*자세한 것은 아래 링크 참조!

https://www.chf.or.kr/c1/sub9.jsp?brdType=R&bbIdx=104935


모든 연주는 '산조'로 진행을 했다.

산조란 기악독주의 민속음악 형식이다. 산조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만큼 어려운 질문같다ㅋ 산조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나중에 살며 듣는 것이 있을 듯 싶다.

브로셔에 연주자의 이름보다 크게 보이는 것이 ㅇㅇㅇ류 ㅇㅇ산조이다.

어느 류를 따르냐가 중요해 보였다.

거문고를 연주한 이선화 씨와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이다. 그저 참고자료로 올렸다.


내가 관람한 공연은 9/7에 있었던 첫번째 '지음'이다.

KBS에서 국악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사회자면서 국악 평론가이신 분이 사회로 무대를 여셨다.(프로그램 명도 성함도 기억 안난다.. 민머리셨고 빨간 스웨터를 입고 계셨다.)

사회자의 간략한 소개가 끝나고, 연주자의 프로필을 담은 간단한 영상과 배경영상(들, 호수, 바다 등등)이 띄워진 상태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난 국악의 문외한이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공연의 어떠한 평을 남길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느낀점을 적는다.

성과가 세가지 있었다.
1. 좋은 기획으로 국악공연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악하면 뭔가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화음이라는 시리즈로 전 세대의 예인을 만남으로(물론, 나는 하나의 공연만 봤지만 앞뒤를 예상할 수 있었다.) 현재진행형 국악을 만난 느낌이었다. 내 전문영역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좋은 연주를 넘어 의미가 담긴 공연기획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뛰어난 음악 감상만을 목적으로 한 공연도 당연히 좋다.

2. 가야금, 아쟁, 거문고의 차이를 알았다.
혹시나 학교에서 배웠을까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는 없다. 가야금, 아쟁, 거문고는 겉보기에는 사실 비슷하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와 베이스 정도의 차이일까? 정확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비유일 것 같다. 세 악기가 가지는 차이는 겉모양 보다는 연주방식에 있었다.

가야금은 손으로 뜯고, 아쟁은 활로 켜고, 거문고는 막대기로 튕기거나 긁는다.
이에 따라 소리, 연주기법, 분위기가 다 달랐다.
세 악기의 이름은 알고있었지만, 구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악에 무지한 나로서는 참 기뻤다.

3. 거문고의 매력을 느꼈다.
위에 이선화 씨의 브로셔 내용을 예로 쓴 이유는... 듣기에 제일 좋은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거문고를 막대기로 튕기거나 긁는데, 그 주법이 보기에도 듣기에도 다양했다.
그런 것을 처음 보아서 신기했던 탓도 있다. 인상이 깊은 장면은 참 힘있게 튕기고 긁는데, 여러 동작에서 막대기와 거문고 몸통이 부딫히는 것에 있었다. 옆에서 고수가 장단을 맞춰 주는데, 막대기가 거문고 몸통을 울리며 줄을 동시에 튕기는데 그 장단이 맞아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흡사 기타로 리듬을 잡는 듯이 연주가 되었다.
이름만 알았었지, 그 존재를 새로 알게된 악기에 전혀 처음보는 주법(그 주법이 일반적 주법인데 내가 몰랐다 할지라도)이 만족감을 더했다.

'연주자'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한 계기도 되었다. 정해진 박자에 맞춰 어떠한 음을 정해진 세기로 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연주한다는 그 상투적인 말뜻을 이제야 조금 본 것 같다.



젊은, 그리고 선배 예인들이 객석을 많이 채웠다. 
그들은 아마 서로 아는 사이겠지. 몰라도 같은 세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동지감이 생길 것 같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사회라고 해도 좋다.
악기라는 무기를 평생을 갈고 닦아갈, 닦고 있는, 닦은 혹은 이 세 가지가 이미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내 칼은 무엇일까, 내 세상은 어디일까 생각한다.
글이라는 칼을 좋아한다. 카메라도 좋다. 수단이 아닌 내 삶 자체일 수도 있겠지.
내 주무기는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원형은 글이지 싶다.

공연을 알게 해주고, 보게 해준 처제가 참 고맙다.
남은 공연을 전부 보지는 못하겠지만, 마지막 득음 공연은 가능하다면 챙겨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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