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친구는 흔히 말하는 클럽 DJ이다. 재미있는 컨셉으로 활동하여 검색하면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사실, 뭐든 검색하면 나오는 시대이긴 하다.)

문제는 친구가 카톡방에 봉을 잡은 여성의 일러스트가 담긴 포스터를 올렸고, 내가 못참고 지적질을 하여 벌어졌다.


내가 쓴 단어는 '천박하다'라는 단어였다.

나는 절대, 봉이든 뭐든 잡고있는 여성의 일러스트가 천박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여성이 천박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드사진이 천박한가? 빨간 불 아래에 있는 누드사진은 천박한가? 무얼 들고 있느냐에 따라 천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사진은 사진 그 자체일 뿐이다. 일러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천박한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다. 그 대상을 이용하는 '이용자'인 사람이 어떻게 대상을 사용했냐에 따라 '천박'해질 수 있다.

'천박'하게 대상을 사용한 사람 자체가 '천박하다'라고 할 수 는 없지만, '천박'하게 사용했다라고는 할 수 있다.

친한 친구여서 강한 단어가 나갔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천박한 것인가?


의도성에 맞지 않게, 자극적인 사진이 쓰였다면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클럽 파티에 초대하는 포스터에 야한 사진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맥락과 상관없이 시선을 끄는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친구의 퍼포먼스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 친구가 가지는 격과 맞지도 않다.

그런 포스터로 홍보한 행사는 가고싶지 않다. 라는 개인적 취향도 있다. 


그 친구가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나중에 메인 스테이지로 나왔으면 좋겠다. 보통 인식되는 양지에도 음지에도 나와 즐거운 퍼포먼스를 펼치는 존재가 되었음 좋겠다.

그런데, 내가 담당자라면 그런 포스터를 쓴 사람을 우리 행사에 부르고 싶지는 않다.


마광수씨의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어려운 단어를 쓸 것도 없다.

내 아이와 부모와 친구와 아내가 보았을 때 당당한가? 당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면 문제가 없다.


대화를 지켜보는 친구들은 쓸데없이 예민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지금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의지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하기 어렵다. 나이가 어려서이기도 하다. 누구는 때가 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좋든 싫든, 세대는 바뀌고 내 세대가 설 때가 온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지만, 훗날을 위한 준비이며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때라고 생각한 순간마저 과정일지 모른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그에 부끄럽지 않은 것인가.

숫자로 누군가를 누르는, '몇년짜리' 경력 덩어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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