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리디북스에서 일정기간동안 무료로 제공하는 책 중 하나였는데, 한번쯤 들어본 ‘츠타야’라는 단어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저자가 서점을 만들면서 하게되는 고민에 대한 블로그 글을 엮어놓은 책이다. 세부적인 내용까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점을 디자인하기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진중하게 고민해나가는 저자의 한 걸음을 느낄 수 있던 책이었다. 책을 보며 저자에 대한 공감과 약간의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용보다도 그런 인상이 내게 깊이 남아있었다.

아내와 떠난 여행에서 숙소로 향하던 중, 노란색의 ‘TSUTAYA’라는 글씨를 보았다. 사실, 츠타야 서점을 갈 생각과 계획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교보문고를 궂이 갈 생각 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츠타야 문고를 보니 두근두근 했다. 책으로만 본 그곳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런 곳을 디자인하는 과정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곳이 그곳이구나 하며 흥분하는 나를 본 아내가 고개를 저으며 잠시 들렀다 가자고 했다. 나는 못이기는체 하며 차를 돌려 츠타야 서점으로 향했다.



외관 모습이다. 스타벅스와 함께 있었다. 사실 츠타야 서점은 여기 저기 많다. 요나고는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오며가며 두개를 보았다.


서점 내부,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다. 일층은 도서와 생활용품, 게임, 이층은 영화 및 음반으로 이뤄져 있었다. 한국 서점을 가면 정적인 느낌이 있다. 그런데, 츠타야 서점에 들어가니 ‘동’적인 느낌이 있었다. Lively라고 하나? 활기가 찬 느낌이었다. 읽었던 책의 제목처럼 취향을 설계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일상에 더 힘이 붙게 하는 힘을 더하는 물건들과 컨텐츠가 있는 곳이었다.


나도 몇개의 물건을 샀다. 그런데,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종이백이었다. 이 종이백에 츠타야의 철학을 담아놓은 것이 아닐까? 한 면은 슬레이트, 한면은 스피커가 인쇄되어 있었다.
슬레이트는 무슨 뜻일까. 영화, 음악, 책, 게임 아마도 그 영화같은 순간들이 시작된다는 뜻이 아닐까. 나의 삶 이라는 작품 속에서 장면들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라는 뜻이 아닐까.
스피커는 마음에 와 닿았다. 영화, 음악, 책, 게임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볼륨을 조절하는 버튼으로 이뤄져 있다. 이것들이 조화를 이뤄 하나의 소리로 출력이 된다. 누군가는 게임을 꺼 놓을수도, 혹은 각각을 조화되게 할지도, 무언가에 치우치기도 할 것이다.

저 슬레이트, 그리고 스피커. 그 음량과 소재를 결정하는 요소들이 저. 쇼핑백 안에 담겨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지 않냐. 그래봐야 상술 아니냐. 이런 말이 들리는 듯 하다. 사실, 나는 이런 마음이다. 저 안에 나의 취향을 담아, 나만의 소리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멋지지 않은가..?!

저것이 상술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내 기꺼이 빠져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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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나고_라멘집_텐신  (1) 2018.10.07

아내와 요나고라는 소도시를 여행을 갔다.
맛집이 중요한 아내가 찾아낸 라멘집, 텐신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3박 4일중에 너무 맛있어서 두번을 방문했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간판


메뉴판이다. 600~800 대이다.



내부 사진들이다. 두번 다 저녁시간대에 방문을 하니, 한산했다. 다른 후기들을 보면 점심시간에는 많이 붐빈다고 한다.


첫번째 방문 때에 시킨 두개의 라멘, 차슈라멘과 야채(야사이)라멘이다. 요리 전문가가 아니라서 맛을 세세하게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도 라멘집이 많고, 일본 다른 지역에 방문 했을 때에도 보통 유명하다는 라멘집은 심심치 않게 가 보았다. 맛있는 집도 있었고, 보통인 집도 있었다. 다른 가게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텐신을 방문하여 라멘을 먹은 소감은... 텐신이 라면맛의 ‘기준’같은 느낌이었다. 여태까지 많은 라멘집을 가서 먹어보고 여러 맛을 보았는데, 아, 그 가게들이 이런맛을 내려고 했던 거구나. 하는 오리지날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뚜렷한 맛을 텐신 라멘가게에서 맛보았다. 물론 맛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개인적인 평이다. 허나, 앞으로 라멘을 다른 곳에서 먹을 때에, 그 맛을 따라하려고 한거구나.. 라고 따져볼만한 기준이 내 안에 생겨버렸다.


두번째 방문 때에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아내가 잠시 손을 씻으러 간 사이에 내가 주문을 했다. 나름 두번째 방문이라고, 메뉴판도 안보고 말도 안되는 일본어 실력으로 주문을 했다. 내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매운라면... 아채라면... 두개!”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는 알겠다며..
“아~ 매운... 아채... 두개?!”
나는 소통이 되었다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온 라멘은 ‘매운 야채 라멘’ 두개였다....ㅋ

아내와 나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비췄지만, 한입 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주문했지만, 맛있었다.
​​


깨끗하게 비운 그릇 사진...ㅋ


주차장도 넓다ㅋ 가게는 크지 않은데 주차장은 무슨 대형 쇼핑몰 수준이다. 별 말 하지 않으니, 주차를 잠시 해놓고 동네 산책을 다녀와도 좋다.



텐신 구글맵 링크
https://goo.gl/maps/gVXUuFx9va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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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타야 서점_요나고  (1) 2018.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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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 다룰 나라는 방글라데시 입니다.




전체 목차는 위와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 다룰 내용은 3.미래(이슈) 입니다.



역사 글 마지막에서 언급한 것처럼 방글라데시는 거버넌스 능력이 떨어진다.
때문에, 다른 NGO보다도 정부 행정을 보조하는 NGO가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적 있는 그라민 은행이다.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소액대출은행이다. 

마이크로크레딧 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을텐데, 그라민은행이 거의 시초이다.
이 은행의 대출금 회수율은 90%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다 갚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출자의 60%가 빈곤에서 벗어났다.

예를들어 릭샤왈라(인력거꾼)는 번 돈의 50-70%를 인력거 대여비로 지출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해줘서 인력거를 사게 하고, 그 돈을 벌어서 갚게 하는 것이다.
재봉틀, 송아지 등 종목은 다양하다.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케이스로 많이 소개된다.



비공식적 통계로 2010년에 방글라데시에서는 10만명당
(자살률을 언급할 때에, 10만명당 몇명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28.08명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외부에서 집계한 공식 통계가 있으나,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다 하여 
2010년에 방글라데시 내부에서 조사하여 발표된 이 통계가 많이 언급된다.
(According to a report by Shaheed Suhrawardy Medical College Hospital, Dhaka, published in 2010, around 6,500,000 people of Bangladesh are prone to suicide. The rate is 128.08 people per 100,000 commit suicide in Bangladesh every year.)

우리나라가 OECD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5배가 넘는 수준이다.(2016년 기준, 25.6명)

방글라데시 혹은 부탄을 두고 행복지수 1위라는 말이 기사에 자주 난다.
하지만, 실제로 방글라데시를 체험한 사람, 그리고 현지인들은 행복지수가 아니라
체념 지수가 1등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행복지수 자체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 곧 경제적으로 양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다.
앞에서 말했듯, 방글라데시의 문맹률은 60%가 넘는다.



방글라데시의 영양상태 지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5세 이하 아동 중, 발육부진(stunting) 비율이 41%,
저체중(under weight)이 36%,
빈곤선(Below the under Poverty line) 아래 살아가는 사람 비율이 40%이다.



방글라데시는 인도와 협력관계 형세로 들어가고 있다.

2015년 인도와 방글라데시 간 영토교환 협정이 있었다. 마을교환이라고도 한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인도령 지역 거주지 111곳이 방글라데시로,
인도에 있던 방글라데시 거주지 51곳이 인도로 넘어가는 협약이다.
나라가 분리되며, 불분명한 국경선이 생겼고 미처 서로 넘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
국경문제에 따른 우리나라 이산가족같은 문제가 생긴 것이었는데,
양국이 합의를 보고 서로 마을을 교환한 것이다.



또한, 2018년 4월에는 인도에서 방글라데시로 통하는 130km정도의 송유관을 설치했다.
인도에서 방글라데시로 기름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인도가 파키스탄과는 적대관계인 것과는 반대로,
방글라데시 와는 친선 관계로 돌아서고 있다.

이를 통해 방글라데시의 경제나 다른 상황들에 인도의 영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이 국교이며, 대부분 온건 이슬람에 속한다.
하지만, 이 방글라데시에 극단주의 테러가 확산되고 있다.
IS와 연계되어 있다는 설도 있다. 종교가 다르거나, 종교적 신념과 다른 이들을 습격하는 식이다.
불교 사원이 공격받기도 하고, 동성애자가 살해되기도 한다. 이런 극단적 테러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때문에, 이슬람을 국교에서 폐지시켜달라는 소수들의 주장도 있지만 결과는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방글라데시도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2018년 4월에는 정부의 ‘직업 쿼터제’가  차별이라 주장하며 다카에 있는 대학생들이 시위를 일으켰고,
100명이 부상당한 사건도 있었다. 이 외에도 크고작은 정치 사회문제로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고대 인도역사에서 동뱅골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12세기 이후부터 이 지역에 이슬람교도가 모여 살기 시작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과 분리, 독립의 역사를 걸쳐 지금의 방글라데시가 형성되었다.

방글라데시는 지리적으로 농사가 잘 되지만 침수도 잘 되는 삼각주에 속하며,
저렴한 인건비를 위주로 한 의류산업이 주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양, 교육, 보건, 경제, 종교 등 다양한 분야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여러 지표가 있지만, 그 이면을 보면 더 어려운 힘든 방글라데시의 실태를 볼 수 있다.
인도와의 대외관계가 좋아지고 있으나,
이는 오히려 강대국의 생산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글은 <방글라데시>의 '미래'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 대한 포스팅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클릭하여 <방글라데시>에 대한 다른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_인트로(Intro)_개요

방글라데시_1. 현재(1)(나라 이름, 국기, 지리)

방글라데시_1.현재(2)(인구 및 경제, 언어, 종교)

2. 과거(역사)_고대,식민지 이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현대의 방글라데시




아래 내용은 (사)위드에서 각 나라의 기본 정보를 공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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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 다룰 나라는 방글라데시 입니다.





전체 목차는 위와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과거(역사)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고대부터 현대의 방글라데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2세기 이전 방글라데시의 역사는 인도 뱅갈지방 역사와 겹친다. 문명이 존재했고, 마우리아, 굽타 등 제국 등 영향권에 들어갔다.

12세기 이후, 아랍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이 전파되었고, 이후 뱅골지방, 그중에서도 뱅골 동부는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그 후, 벵갈 술탄국으로 벵골 국가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무굴제국에 정복당했다가 무굴제국이 쇠퇴하면서 벵골 나왑국이 독립되었다. 이후, 인도 마라타왕국에 정복되었다가 영국에 의해 인도령 내에 속한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영국은 식민지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인도령의 힘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행정적 편의라고 말은 했지만 종교로 분열을 일으키기 위해 서뱅골(지금의 방글라데시 지역)을 분할하는 ‘뱅골 분할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에 대해 뱅골인들은 반발을 일으켰고, 이는 인도 전역으로 확대되어 영국은 ‘뱅골 분할령’을 철회한다.

식민지 시절, 힌두는 영국에 호의적이었지만 무슬림은 그렇지 않았다.(한국으로 치면 일제시대 친일파나 군부시대 군인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이야기로 들어가보면 사정은 다를 수 있지만, 추상적으로 설명을 위해 분류를 위와 같이 해볼 수는 있다.)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자라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힌두와 무슬림의 차이를 잠시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인도를 실제로 방문했을 때에 힌두가 주로 사는 지역에 가면 외국인을 신기해 하기도 하고 눈을 마주치면 잘 웃어준다. 그런데, 무슬림이 사는 지역에 갔을 때에는 지나가든 말든 이상할 정도로 눈길한번 주지 않던 기억이 있다. 이 경험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외부 세력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인도령 국민회의는 힌두교도가 주도하고 있었고, 무슬림은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소외되었고 무슬림은 이에 반발하여 전인도 무슬림 연맹을 창설한다. 힌두와 무슬림 사이에 분열이 일어난 상황이다.



1947년, 인도령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이 때, 현재의 파키스탄과 동뱅갈이 종교적 이유로 인도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리고, 동뱅갈은 파키스탄에 병합되어 동파키스탄이 된다. 떨어져 있는 두 땅이 한 나라가 된 것이다.



이렇게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과 파키스탄에 편입된 동파키스탄으로 나눠졌다.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고, 등가적 성립이 아닌 편입된 상황에서 두 땅의 관계가 좋을리 없었다. 종교적 문제, 그로 인한 차별 때문에 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분리되었지만 동서간에도 차별이 일어났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 요직에는 서파키스탄 출신만 주로 임명되었다. 둘 사이는 언어도 달랐다. 동파키스탄은 뱅골어를 사용했는데 서파키탄은 우르드어를 사용하였다. 서파키스탄은 동 파키스탄에 뱅골어가 아닌 우르드어를 쓰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다카(현재 방글라데시 수도)에서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시위를 군대로 진압하여서 뱅골인들을 자극하였고, 뱅골인들은 아와미 연맹을 결성하였다.

*참고로 시민을 군대로 진압한 것은 큰 문제이다. 군대의 존립목적은 외침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시위진압을 경찰이 하고, 군인은 하지 않는 이유이다. 시민을 군대로 제압했다는 것은 이미 그 국가에 속한 사람으로서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 중에 광주민주화 항쟁이 지금까지도 유독 회자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광주에서도 경찰이 아닌 군대가 시민을 제압했다.



이 둘을 갈라놓는 사건은 하나 더 있었다. 1970년, 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준 사이클론 ‘볼라’가 동파키스탄을 덮쳐 50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그런데, 파키스탄은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원조물을 불공평하게 분배하였고 동파키스탄 사람들은 분노하였다.



이 해 총선에서(1970년), 뱅골인들이 만든 아와미 연맹이 압승해서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당시는 동파키스탄 인구수가 서파키스탄 수보다 많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파키스탄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총선 무효화를 선언했고, 동파키스탄에서는 다시 폭력시위가 일어났다. 이를 다시 서파키스탄이 군대로 진압한다. 



이 와중에 아와미 연맹 당수인 라흐만은 1971년에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선언하고 서파키스탄군이 라흐만을 체포하자 동파키스탄 사람들은 독립군을 결성해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이때 파키스탄 군이 방글라데시로 들어와 사람들을 학살하고, 방글라데시 독립군은 인도 국경에서 게릴라 투쟁을 펼쳤다. 파키스탄은 인도 영토를 폭격하고, 힌두 뱅골인들 1000만명이 인도로 피난을 오자 이를 계기로 인도군도 이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몇번의 전쟁 끝에 결국 방글라데시는 독립한다.



독립 후, 독립을 선언했던 라흐만이 초대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정치적 혼란과 부정이 만연했다. 쿠데타가 4번 이상 일어났고, 지도자 2명이 암살되었다.

현재는 의원내각제를 취하고 있으며, 정부 거버넌스(통치력)이 낮다.


이번 글은 <방글라데시>의 '과거(역사)'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미래(이슈)'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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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_인트로(Intro)_개요

방글라데시_1. 현재(1)(나라 이름, 국기, 지리)

방글라데시_1.현재(2)(인구 및 경제, 언어, 종교)

방글라데시_3. 미래 그리고 정리



이번 글에서 다룰 나라는 방글라데시 입니다.



전체 목차는 위와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1. 현재 에서도 (4)인구 및 경제, (5)언어, (6)종교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1억6천4백만 정도이다. 남한에 비교한다면, 영토는 1.5배인데, 인구는 3배가 넘는 셈이고, 인구밀도도 높은 편이다. 심지어 그 땅이 넓은 러시아보다 인구가 많다. 누군가 쓴 글의 제목이 바글바글 방글라데시 였던 것이 기억난다. 

GDP는 현재 1000달러 중반 수준이고, 값싼 노동력을 중심으로 의류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방글라데시의 공식 언어는 뱅골어이다. 98%이상이 뱅골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으며, 뱅골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이 뱅골어는 인도에서 공용어로 지정된 22개의 지정어중 하나이기도 하며 서뱅골에서도 쓰인다.

하지만, 문맹률이 60%를 넘는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86.6%, 힌두교가 12.1%, 불교가 1% 크리스트교가0.4% 기타종교가 0.3%이다. 퍼센트는 앞과 같지만, 이슬람교가 방글라데시의 국교라고 해도 무방하다. 방글라데시는 전쟁을 통해 세워진 이슬람교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을 지지하는 정당이 방글라데시 의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보통 이슬람 사람들이 과격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알카에다(오사마 빈 라덴)와 IS의 영향이다. 모든 이슬람이 그렇지는 않다. 타 종교에 대한 분쟁이 있고, 이슬람 내에서 있는 분쟁도 있다.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뉜다. 비율로는 수니파가 90%, 시아파가 10%에 해당한다. 해석하면 ‘정통파’와 ‘분파’이다.

시아파가 급진적인 성향을 띄고 있으나, 알카에다나 IS는 모두 수니파 출신이다. 그렇다고 수니파 전부가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방글라데시는 온건 이슬람에 속하는 수니파가 많지만, 그 안에서도 테러를 일으키는 급진적 세력이 있다. 어느 곳이든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이 있듯이 말이다.



이번 글은 <방글라데시>의 '현재' 중에서도 '인구 및 경제, 언어, 종교'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과거(역사)'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클릭하여 <방글라데시>에 대한 다른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_1. 현재(1)(나라 이름, 국기, 지리)

방글라데시_2. 과거(역사)_고대,식민지 이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현대의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_3. 미래 그리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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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 다룰 나라는 방글라데시 입니다.



전체 목차는 위와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1. 현재 에서도 (1)나라 이름, (2)국기, (3)지리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나라 이름을 살펴보면, 그 나라에 대해 조금 짐작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인도의 지명 중에는 데시(desh)라고 끝나는 땅들이 많다. 마디아 프라데시, 아루나찰 프라데시, 안드라 프라데시, 미하찰 프라데시, 우타르 프라데시가 그것이다. 데시(desh)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데시(desh)도 같은 ‘땅’이라는 뜻이다. 방글라데시의 뜻을 풀면 방글라(벵갈)+데시(나라) 즉, ‘뱅골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방글라데시 국기는 초록색 바탕 가운데에 빨간색 원이 그려져 있다. 초록색은 젊은이의 의지와 풍요로운 대지, 빨간색 원은 방글라데시 독립을 위해 흘린 피와 벵골 지방에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한다.

역사 부분에서 설명되겠지만,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하나였다가 분리되었다. 뱅골지방이 동뱅골과 서뱅골로 분리되었고 동뱅골은 방글라데시 서뱅골은 콜카타 부근이다.




방글라데시는 인도 땅에 오른쪽 귀퉁이에 둘러쌓여 있는 나라이다. 극히 일부 국경만 미얀마와 마주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국토 대부분은 지리적으로 갠지스 강 삼각주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삼각주는 강 하류가 바다가 만나서 생기는 퇴적지형이다. 낙동강 하류가 바로 삼각지이다. 농사가 잘되지만 침수도 잘된다.

방글라데시의 수도는 ‘다카’이다. 모스크가 700개 이상이어서 모스크의 도시라고도 불리우며, 릭샤가 많아서 릭샤의 수도라고도 불리운다.




이번 글은 <방글라데시>의 '현재' 중에서도 '나라 이름', '국기', '지리'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인구 및 경제, 언어, 종교'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클릭하여 <방글라데시>에 대한 다른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_인트로(Intro)_개요

방글라데시_1.현재(2)(인구 및 경제, 언어, 종교)

방글라데시_2. 과거(역사)_고대,식민지 이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현대의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_3. 미래 그리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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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 다룰 나라는 방글라데시 입니다.


위는 목차입니다.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 현재 그 나라에 대한 기본 정보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재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만들어졌는지 과거를 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그 나라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기사나 이슈거리를 살펴볼 것입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파키스탄은 원래 한 나라였다. 각자의 나라를 설명하려면 한 나라였던 이 두 나라를 설명치 않을 수 없다.

인도에 지명을 보면, desh로 끝나는 지명이 많이 보인다. sthan으로 끝나는 지역도 있다. 만약, 국경선을 그어놓지 않고 인도 지명과 주변국들의 이름을 지도 위에 놓는다면 그 이름들 만으로는 나라와 지역을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방글라데시가 그렇고 파키스탄이 그렇다. 세 나라는 한 나라였으며, 한 문화권이었고 그것이 현 지명과 국명에서 볼 수 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국경선이 그어졌고 다른 나라가 성립되었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이해 아래에, 한 나라가 아닌 이 지역을 본다고 생각하면 이후 내용 위를 조금더 손쉽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은 <방글라데시>의 'Intro'였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현재'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을 클릭하여 <방글라데시>에 대한 다른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사)위드에서 각 나라의 기본 정보를 공부하는 

'라마나욧 스터디'를 위해 직접 제작한 자료입니다.


이번 글에서 다룰 국가는 바로 캄보디아 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슈 및 보건영양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이 파트는 캄보디아의 현 상태와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캄보디아에는 많은 NGO가 있다. 코이카 기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국가의 NGO가 있는 나라가 캄보디아이다. 3429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어서 전세계 NGO의 나라라고도 불리운다.

ODA계의 악동이라는 별칭도 있으며, 현재 NGO는 돈 많이 주는 좋은 직장으로 인식이 된다. 풍부한 공적자금 유입으로 정부 부패가 심한 편이다. 


2015년에는 새 NGO법이 개정되었다. 이른바 NGO탄압법이라고 불리운다. 많은 NGO가 들어와서 자금을 풀게한 다음, 자신에 유리하게 상황을 통제하려는 국가적 정책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캄보디아에 건강한 NGO상이 필요하다. 


배트남전과 내전때 깔린 불발탄과 지뢰가 캄보디아 전역에 퍼져 있다.

모두 제거하는데에 약 150년이 걸릴 전망이며, 피해자의 1/3이 어린이이다. 지금껏 2만명 정도가 사망하고 4만 4천명 정도가 부상을 입었다.



캄보디아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사업 중 하나가 이 지뢰제거 사업이다. 이 때에 사람 대신 아프리카 주머니쥐를 이용한 제거 방법도 있다.



하루 1.9$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이 33.6%이다. National poverty line 이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1 4%, 영유아 100명중 25명이 생후 1년 내에 사망한다.



캄보디아의 평균 교육기간은 5.8년으로 재학 기간이 짧다.

문맹률은 23.7%이고, 그중 여성 문맹률이 33%이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의 영향으로 지식층이 단절되어, 가르칠 교사가 부족한 형편이다.

교육과정과 교육방식도 불일치한다. 교육과정은 자유로운 프랑스이지만, 진행방식은 억압하고 통제하는 구소련 방식이다.



1990년 기준, 극단적으로 심각한 상황에서 심각한 상황으로 호전되었다.(말이 호전이지, 사실 호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양결핍이 심한데 5세미만 유아 중 1/3이상이 정상 신장, 체중, 지능에 다다르지 못한다.



캄보디아에서 보이는 영양결핍 형태는 ‘숨은 기아’이다. 비타민과 무기질 함량이 적은 곡식을 주로 섭취하여 칼로리는 높지만 미량영양소 섭취가 부족하다.



그 대안으로 여러 대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Iron fish가 그중 하나이다. 철분이 부족하네 음식에 저 철생선을 넣고 끓여 철분을 보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음식에 철분이 있을지라도 그 철분이 몸에 흡수되는 철분인지는 다른 문제라고 한다. 홍보는 그럴듯하게 되는듯 한데,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위 방법이 기발해 보이지만, 그래도 기본인 음식으로 영양을 보충하는게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Simple is best.



캄보디아는 지하경제가 발달해 있다. 그 중 하나가 성매매이다.

에이즈 감염자가 약 7만 5000명이며, 해마다 약 1000명씩 증가하고 있다.

아동 성매매가 특히 심각한데, 구호기구로부터 2012년부터 3년간 구조된 아동 수만 320명이다.



두번째는 바로 마약이다.

캄보디아는 마약 유통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일상에서 구하기 쉬우며, 18-35세 중 1만 3천여명 정도가 마약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릭샤(인력거) 기사중 다수가 마약을 하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것 중 유명한 것이, 대마초 피자이다. 그 정도로 마약이 만연해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번 글은 캄보디아의 '이슈 및 보건영양'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마지막으로 캄보디아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를 클릭하여 캄보디아에 관한 다른 정보를 살펴보세요:)

캄보디아_1.기본정보(나라이름, 지리, 기후, 인구, 언어, 역사)

캄보디아_2. 역사(고대에서 현대까지)

캄보디아_3. 종교(구성, 정령신앙, 기독교)

캄보디아_5. 정리


아래 내용은 (사)위드에서 각 나라의 기본 정보를 공부하는 

'라마나욧 스터디'를 위해 직접 제작한 자료입니다.


이번 국가는 캄보디아 입니다. 지난 글들에서 캄보디아에 대한 여러 정보를 다루었습니다.

이 포스팅은 간단히 캄보디아의 상황과 설명을 한줄로 정리하기 위해 작성했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다른 작성 글을 참고해 주세요:)


 

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크메르 공화국 때 문화적 전성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현재는 킬링필드 및 내전으로 기초 인프라가 무너진 상태이다.

이 때문에 교육, 영양, 지하경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지식층과 젊은 층은 기독교에 열려있는 편이다. NGO 등 다양한 루트로 선교 가능성이 열려 있는 나라이다.


이상으로 캄보디아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나라의 여러 정보들을 다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캄보디아_1.기본정보(나라이름, 지리, 기후, 인구, 언어, 역사)

캄보디아_2. 역사(고대에서 현대까지)

캄보디아_3. 종교(구성, 정령신앙, 기독교)

캄보디아_4. 이슈 및 보건영양


아래 내용은 (사)위드에서 각 나라의 기본 정보를 공부하는 

'라마나욧 스터디'를 위해 직접 제작한 자료입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할 국가는 캄보디아 입니다.


그 중에서도 종교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캄보디아는 국민의 95%가 소승불교(Theravada Buddhism)를 믿는다. 나머지는 이슬람교, 기독교(베트남인), 힌두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설명한 크메르 루즈에 의해 모든 종교에 대한 심한 박해가 있었지만 1993년부터는 불교가 국교로 채택되어 이어지고 있다.



캄보디아는 이런 정책적으로 이어진 불교 외에, 정령신앙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이다. 귀신에 해당하는 ‘카뮈’라는 존재를 믿는데, 우리나라 처녀귀신, 몽달귀신 같은 ‘귀신’ 개념이다. 그래서 밤에 혼자 다니는 것을 두려워하고, 집을 지키는 집 귀신인 ‘옴니엔 티’ 

같은 존재도 믿는다. 뿐만 아니라 태어나면 승려에게 사주팔자를 보고, 이름을 짓거나, 미취학 아동들은 사원을 놀이터삼아 놀게 되는 등 자연스럽게 생활에 불교가 들어가 있다.



지난 15년동안 캄보디아의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아왔다. 크메르족은 기독교를 서구의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민족주의와 불교 사이의 괴리현상으로 인하여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개방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1954년에 전체 성경이 크메르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크메르어로 된 신앙서적이 있으며 영화 '예수'가 크메르어로 번역이 되어 있다. 크메르족에게는 무엇보다도 현재 그들의 육체적, 정서적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역이 요구된다.

미션캄푸치아 21이라는 운동이 캄보디아 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2021년까지 캄보디아에 있는 모든 마을에 교회를 세우는 운동이다.


이번 글은 캄보디아의 '종교'에 대해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캄보디아의 '여러가지 이슈'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를 클릭하여 캄보디아에 대한 다른 정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_1.기본정보(나라이름, 지리, 기후, 인구, 언어, 역사)

캄보디아_2. 역사(고대에서 현대까지)

캄보디아_4. 이슈 및 보건영양

캄보디아_5.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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