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까. 처음으로 비디오 테잎을 손에 쥐어보았다. 생일선물이었나 싶은데, 그 비디오테잎이 바로 ‘라이온킹’이었다. 라이온킹을 만든 회사가 ‘디즈니’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도, 라이온킹의 OST를 부른 사람이 ‘엘튼존’이었다는 사실도 한참이나 나이가 든 후에야 알았다. 한국말 더빙이었다. 외국어 자막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 들으면 오글거릴 수 있겠지만, 각 캐릭터 성우들의 목소리와 한국어로 번역된 각 노래의 가삿말을 아직 흥얼거릴 수 있을만큼 꽤나 생생히 기억한다. 몇번이나 보았을까. 라이온킹의 처음과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Circle of life’라는 곡이 참 좋았다. 삶의 순환이라는 노랫말이 줄거리와 기가막히게 연결된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주인공 심바, 소꿉친구이자 배우(사)자 날라, 아버지 무파사, 삼촌 스카, 티몬과 품바, 사라비 각 케릭터의 대사와 행동 눈빛까지도 참 기억이 난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이었음에도. 물론, 각각이 갖는 의미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비디오 플레이어도, 라이온킹 테잎도 이제는 어디갔는지 찾을 수 없지만, 그때 받은 라이온킹은 아직도 선물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2015년, 결혼을 앞두고 신혼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신혼여행지에 영국이 포함되어 있었고, 뮤지컬을 한편 볼 계획이었다. 소심한 나는 비교적 저렴한 오페라의 유령 정도를 볼 생각이었지만, 대범한 아내는 대체 무슨 소리냐며 라이온킹 정도는 봐줘야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했다. 예약은 나의 몫이었는데, 예약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계획한 것보다 좋은 자리(즉, 비싼 자리)를 예약하고 만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파혼의 위기를 맞았지만 사랑으로 잘 넘겨내었다. 돌이키면, 그 실수는 참 행운이었다. 더 좋은 자리에서 라이온킹을 볼 수 있었으니.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뮤지컬 시작에 ‘Circle of life’와 함께 모든 동물들이 나와 심바의 탄생을 축하한다. 여기저기서 동물들이 나오고 심바가 천천히 들려 올라오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눈물은 줄줄 나오는데,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눈을 부릅뜨고 복도를 지나는 동물들을 쳐다보았다. 뒷자리에 앉은 영국 할머니도 울고있었다.

그 감동을 안고,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투어표를 감사하게도 구할 수 있었다. 정말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두근두근 신나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CIrcle of life’가 울려퍼지는 오프닝에 눈물이 줄줄 났다. 저 들려올려진 심바는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할지 알고 있을까.(사실 인형이었고, 동일한 인형은 4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이미 결말을 알지만, 그 과정을 한번더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아주 단순 비교를 하면, 영국에서 본 공연이 더 우수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영국에서 본 배우들이 그대로 캐스팅되었고, 옆에서 북치는 아저씨들도, 마치 사람같은 치타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두가지 큰 차이가 있었다. 음향과 동물의 숫자였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내 귀 문제인가, 혹은 자막이 몰입을 방해하나 싶었는데 대사치는 소리가 뭉툭했다. 소리는 느낌이라 치더라도, 오프닝에 등장하는 동물의 수는 눈에 띄게 적었다. 무대에서 오는 차이지 않을까. 영국의 극장을 생각해보면, 로비가 매우 좁았는데 시골에 있는 버스터미널 정도로 기억한다. 바글바글했다. 반면에, 무대는 넓고, 복도 경사는 완만했다.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기에 좋은 무대, 동물들이 등장하기 좋은 복도였다. 물론 전용 극장이니 비교할 바는 아니다. 더 할말은 많으나 여기까지.

좋은 공연이었다. 소리가 더 뭉툭하다 하더라도, 동물의 숫자가 줄어든다 하더라도. 그 오프닝을 보면 나는 다시 눈물을 흘릴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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