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에 파카에서 주최하는, 정확히 말하면 파카를 유통하는 (주)항소에서 주최하는 수필공모전에 응시한 적이 있다. 그때 운좋게 순위에 들어 상품으로 파카 만년필 하나를 받았다. 만년필 이름도 나중에 찾아봐서야 알았는데, ‘파카 어반 만년필’이다. 돈으로 사자면 10만원이 조금 안하는 녀석이었다. 만년필이 10만원이면 정말 싼 축에 속한다. 만년필을 파는 사이트에 들어가 가격을 살펴보면 정말 헉소리난다. 그런데, 10만원도 안하는 만년필을 조금 써보니, 그 가격이 이해가 가고 그 가격을 주고 만년필을 사는 사람들도 이해가 갔다. 물론, 나는 그 세계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어쨌든, 고가 세계에는 발을 못 들여놨지만 내게는 어느정도 의미있는 만년필이라 상으로 받은 이 물건을 조금씩 써보기 시작했다. 재미가 있었다. 일반 펜보다도 훨씬 부드러웠고, 잉크도 필요할 때 충전해서 쓰는 것도 재미있었다. 물론, 그립감도 일반 펜보다는 편했다. 너무 얇거나 너무 두껍지도 않은 그 적당함. 펜을 쥐었을 때 오는 안정감 있는 무게중심. 비싼건 더 좋겠지만, 여튼 소소한 만족이 있는 만년필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한번 떨궈서 펜촉 끝이 약간 휘었다. 그것도 이미 몇년 전이다. 그래도 잘 나와서 그냥 쓰고 있었는데, 얼마전부터는 펜촉과 그립 사이에서 잉크가 조금씩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잠재우고 있다가, 그래도 깨워야겠다고 생각하여 AS를 맡기기로 결심했다.

파카 만년필 AS받는 법


1. 적당한 종이에 정보를 적는다.
-이름, 연락처, 주소를 쓴다. 그리고 만년필 어느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 아는대로 기재한다. 요청사항이 있다면 또한 기재한다. 나는 증상 외에도, 혹시 펜촉을 갈아야 한다면 F촉보다 더 가는 촉으로 바꿀 수 있는 지를 질의했다.

2. 만년필을 잘 포장한다.
- 마침 면도기 케이스에 만년필이 딱 들어가서 그를 이용해 포장하였다.

3. 택배를 보낸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120-3번지 5층 (주)항소 파카 AS담당자 / 02-2017-9655
- 택배는 선불로 보내야 한다. 생각해보면, 받는 택배를 착불로 다 해결하면 얼마나 번거로울까, 요정도는 부담해도 괜찮을 듯 싶다.
- 미리 전화나 연락은 하지 않고, 그냥 보내도 괜찮다.

4. 기다린다.
- 사실, 만년필이 잘 도착했는지... 택배사에서 문자알림은 왔지만, 따로 문자나 전화 한통을 기대했는데 오지 않았다.
- 그래서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분실될 염려는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다. 별 의심 없이 알겠다 하고 끊었다.


수리된 만년필 도착!
정말... 전화 한통 없이, 문자 한통 없이 만년필이 도착하였다. 혹시나, 추가 금액이 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부분은 없었던 듯 하다.


도착한 택배 모습, 뽁뽁이에 잘 싸진 채로 왔다.


면도기 케이스에 보냈는데, 만년필 케이스에 담겨 왔다. 그리고 간단한 만년필 관리 방법과 함께 AS사항을 적어서 같이 보내주었다. 세척+쉘 교체+촉 교정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따로 적어놓았던 ‘촉을 교체해야 할 경우, F촉보다 가는 촉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F촉보다 가는 사이즈는 없습니다.’라고 친절히 답을 해주고 확인도장도 꽝 찍어주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잘 수리가 되어 온 것 같다.
잉크를 채우고 써 보았다. 잉크가 새지 않고 잘 써진다! 심지어 촉까지 수리가 되어 왔으니!

AS 기간은 약 1주일이 걸렸다. 내 만년필은 저렴이어서. 추가 금액이 없었을지 모르겠다. 사전 연락이 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왠지 괜찮다ㅋ 전자제품을 보냈다면 빠른 피드백에 급해 있었을텐데, 만년필을 보내서인지 이런 아날로그적인 피드백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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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넛지  (0) 2018.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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