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하늘 사진을 자주 찍는다.
그렇다고 빈 하늘을 찍지는 않는다.

내 시선에서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걸쳐지는 무엇과 함께 찍는 경우가 많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항상 그러한데, 주로 많이 찍히는 것은 전깃줄이다. 어느정도의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에 가도 전기선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전기선들을 바라볼 때에, 유념하는 점이 있다. 얼마나 얽혀있는가, 얼마나 복잡한가이다. 저 전기선들을 한줄 한줄 따라가다보면, 아마 한 건물로 다시 가정으로 이어지겠지. 각자의 필요가 저 선을 타고 얽혀있는 것이 마치 인간관계와 같다.

아파트나 고층 빌딩들이 들어선 도심에 가면 다른 풍경이 있다. 얽혀있는 전기선을 찾기 어렵다. 하늘을 보면, 건물의 꼭대기가 하늘에 선을 그어놓는다. 끼워맞춘듯이 아파트와 고층 건물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관계도 그와 같지 않을까.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하고, 서로 불편하게 얽혀있지 않은 그런 관계. 눈에 보이지 않는, 있다고 믿고 싶으나 없는 관계.


일본, 요나고 라는 곳에 왔다.

아내와 함께하는 또 하나의 여행.
땅을 뜨며, 다시 땅을 밟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여행의 매력에 대해 말할때에 ‘낯선 곳’에서 ‘낯 선 사람들’을 만나는데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익숙한 사람과 낯선 곳을 방문하는 것도 참 묘미이다.

나와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다른 것을 찾는 이유는 결국, 그 상황에 맞딱뜨렸을 때에 ‘낯선 나’를 만날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지하고 있든 아니든.

익숙한 사람과 낯선 곳을 방문하면, 오히려 더 낯선 나를 만난다. 이것도 우리만의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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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카페에 온다.
유명한 브랜드 커피점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개인브랜드 커피(?)점에 가려 하지만, 이 곳에 오는 이유는 아침에 문을 여는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슬픈 이유를 하나 더 대자면, 의무와 사명감으로 방문하던 개인브랜드 카페가 영업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다는 것을 더할수 있겠다. 그곳에는 지금 같은 사장님이 커피 대신 골뱅이를 팔고 계신다.
그 이후로, 이곳에 방문한다. 이름을 숨겨 무엇하리, 이디야에 온다. 반년 넘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변함없는 멘트로 맞아주시는 아르바이트 직원분이 계시다. 어렴풋이 따져도 반년이 넘는 기간동안 얼굴을 보았다. ‘안지 반년이 넘었다.’라는 사실에 비해 주문을 주고 또 받는 순전히 양방아닌 일방적인 사이이다. 앉는 자리와 카운터는 멀리 떨어져 있고, 음악은 크다. 궂이 말을 걸 이유도, 일므을 알 필요도 없다. 나는 문이 열려있으면 그만이고, 앉을 자리가 있다면 다행이다.

에스프레소와 얼음잔
시키는 메뉴는 둘중 하나이다. 에스프레소 혹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분위기니 뭐니 하는 문제를 떠나, 내게는 가격대비 가장 합리적인 메뉴이다.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게 단 것은 좋지만, 시럽이 들어간 단맛은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맛이 아닌데 궂이 돈을 더 주고 사먹을 이유가 없다.
자리에 앉음면, 쌉쌀하고 고소한 에스프레소를 한입 혹은 욕심내어 두입을 대고는 얼음잔에 부어 차갑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나름의 의식과 과정이랄까.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먹고싶은 것이 아니다. 그냥, 에스프레소를 얼음잔에 부어먹는 것이 좋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 까페를 가든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얼음잔을 같이 부탁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카페의 수준(?)이 슬며시 드러난다. 아무런 의심과 생각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얼음잔을 주는 곳이 많다. 감사하다. 이 말은, 기껍지 않은 곳도 있다는 말이다.

어느 곳의 이야기를 해볼까. 할xx커피라는 곳이었던 것 같다. 얼음잔을 달라고 하니 표정이 굳어진다. 나를 잠시 쳐다보고는 물은 같이 못준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얼음잔을 푸줏간 고기주듯 턱 하고 내려놓았다. 얼굴이 화끈했다. 이사람이 지금, 나를 돈 아끼려는 사람으로 보는구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고작해야 에스프레소에 얼음에 차가운물 섞어 휘휘 저은 액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는구나. 내가 제도의 틈을 이용해서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공짜인 얼음을 받고 물도 그냥 달라고 해서 겉으로 보이는 품격은 지키면서 자기 소중한 돈 오백원 정도는 아껴보려는 그런 사람으로 보는 것이구나.
물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두 가지의 할말이 있었다. 얼음값을 지불해야한다면, 지불하겠다고. 원래 에스프레소는 물 한잔과 같이 줘야 맞는 것이라고 말이다. 설탕과 스푼은 당연하고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든 얼음잔을 잘 달라고 하지 않는다. 스타xx같은 유명브랜드에서는 물론 기꺼이 얼음컵을 준다. 직원이 어떤 마음으로 얼음컵을 건네든, 일단 겉으로는 웃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

자족함과 굶주림
어떤일이 있었든, 나는 지금 이디야에 앉아있다. 에스프레소를 시켰지만 얼음컵은 부탁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시원한 곳, 활기찬 음악, 편한 의자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 이 단어를 조합하면 꽤 만족스러운 분위기가 상상된다. 대부분의 시도가 만족스럽다. 문제는 저 반대편에 있는데, 대부분이 아닌 때에는 문득 아쉬워진다. 더 맛있는 커피가 먹고싶다는 생각이다.
좋아하는 커피점이 나도 있다. 맛있는 원두를 볶아 판다. 방문한지는 오래되었다. 그 곳에 가서 원두를 무엇이든 사고 싶다. 목요일 정도에 방문하여 갓볶은 원두를 사고, 여유있는 토요일 아침 10시정도 그 원두로 커피를 내려마시고 싶다. 그 맛이 그립다. 만난지가 참 오래여서 더 그립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누군가가 말하는 원칙이 있다면, 그것이 여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더 맛있는 것을 먹고싶고, 더 아름다운 것을 보고싶은 것이 그렇다면 욕심일까. 그냥,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나에게 허락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인정하고 수긍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 나도 모르게 만족하지 못하는 나는 그렇다면 너무 욕심쟁이인 것일까. 나와 내 삶과 환경에 대고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하는 중인 것일까.
커피가 아니더라도, 빵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 허락된 여러 요소에서도 문득 느낀다. 내가 자족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죽도록 싫고 힘든 부분이 있다. 개선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상황에 마주하였을 때에, 나는 자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의 욕심을 인정하고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여기에서 나의 본심을 이야기하면, 나는 맛있는 커피를 택하고 싶다. 당연하다. 더 시간이 들더라도, 더 노력이 들더라도, 이런 좋은 환경에도 만족하지 못하냐는 비난을 듣더라도 말이다. 음악이 없어도, 편한 의자가 없어도, 나는 조금 더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 ‘난 만족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자족함보다는 굶주림을 택하고 싶다. 자족은 거짓만족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굶주림은 노력으로 그 노력은 만족함으로 이어질테니 말이다. 물론, 노력의 다음 순서가 절망인 경우도 있다. 없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있다.

카페에 앉아 잔을 이미 비웠다. 부어진 커피는 어디로 흡수되었는지, 내 마음은 아직 허하다. 생각나는 것은 더 맛있는 커피 한잔이다.


가을이 왔다.
배수관 옆, 올 것 같지 않은 곳에서도 불쑥.
어느새 와 있었다.

어찌보면 저곳이, 내 마음보다 낫구나.

거창, 한 산에 오르니 트랙터가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하는 질문이 나오려다 들어갔다.

내가 올라온 길로 먼저 올라왔겠지, 너라고 특별하겠니, 나라고 특별한 길을 걸었겠니.


지금은 고요한 가운데에 있어도, 일할 때는 검은 매연을 품으며 탈탈탈탈 굉음을 내겠지.

결국 너는 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밀어버리고 없애버리겠지. 그것이 네 일이고, 존재겠지.


알고있다. 너에게는 의지라는 것이 없어서, 이렇게 말을 거는 듯한 생각조차 참 우스운 것이라는 것을.


단지, 참 예뻐보이더라. 산 자락에 구름이 깔리고, 초록과 하늘과 흰색 그리고 흙색 그 위에 다홍색의 네가 서있는 모습이 묘하게 어울리더라. 그냥,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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