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 미얀마 국경이탈 다시 급증세…누적 난민 58만2천명


미얀마 로힝야족이 매일매일 핫이슈이다. 한국에서 검색만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로힝야족 사태를 정리해 보았다.

정치,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일어난 일이며, 아웅산수찌도 이 문제와 연관이 있다.


(1)로힝야족 사태

불교나라 미얀마에서 이슈가 되는 한 사건이 있다.  스스로는‘미얀마 소수민족’으로, 미얀마 정부에서는 ‘불법 이민자’로 분류하는 로힝야족 탄압이다. 로힝야족은 무슬림으로 인도 동부 언어인 벵골어를 쓰며, 180만~200만 규모로 78년 이전엔 대부분 미얀마 서부와 북부에 살았다.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지만, 아웅산 수지가 집권함에 따라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로힝야족은 인근국가인 방글라데시로 도망가거나 보트피플로 연명하기도 하는 처지이다. 21세기형 홀로코스트(홀로코스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유태인과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천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이다.) 라고도 불린다.


(2)영국 식민시대 그리고 소수민족

로힝야족 사태는 여러 요소가 겹쳐 만들어졌다. 먼저 영국 식민지 시대를 살펴보자.

영국 식민지 시대 때, 영국 정부와 영국 기독교 선교사들은 미얀마 국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노력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불교가 강한 미얀마, 그중 버마족을 개종시키기는 어려웠다. 영국 정부는 버마족을 견제하기 위해, 산간이나 구석에 사는 소수민족을 개종시켜 미얀마 식민통치 부역자로 사용하였다. 로힝야족은 무슬림이지만 식민통치 부역자로 사용된 종족 중 하나였다.(우리나라 친일파와 비슷하다.)


(3)정치적 이유 : 군부독재가 자행한 불교 사회주의

로힝야족 탄압은 군부독재에서 시작했다. 군부독재자였던 네윈은 버마족과 불교를 우선시하는 ‘버마식 사회주의’, ‘불교 사회주의’를 국정철학으로 내세웠다. 일당독재, 외국인 추방, 등 폐쇄적 요소들이 담긴 그 정책에는 소수민족 탄압도 포함되어 있었다. 1982년, 미얀마 군부가 만든 국적법에서 국민 기준을 영국 통치 이전부터 거주한 민족으로 제한했다. 식민잔재를 청산하겠다는 법이다. 로힝야족은 본인들이 토착민족이라 주장했지만, 결국 외국에서온 이민자로 분류되었다.

1978년, 로힝야족 2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밀려났다. 91~92년에는 25만명 이상이 쫓겨났고, 그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단순히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군부와 로힝야족간 방화, 살인, 강간 등 비인도적 무력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4)종교적 이유 : 소수종교 탄압

민주화가 된 현재에도 로힝야족 탄압은 끊어지지 않았다. 민주화 과정에서 불교와 민족주의가 결합하여 배타적인 소수 종교 탄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미얀마 불교 자체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일부 과격한 불교 민족주의 단체가 탄압을 행하고 있다. 이는 타임지에도 미얀마 불교 테러리즘의 얼굴 이라는 제목으로 다뤄진 적이 있다. 최근에도 이를 다룬 다큐멘터리(위엄있는 W)가 발표되었다. 극단적 불교 지도자 중 대표적 인물은 ‘아신 위라투’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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