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해질 무렵, 사각 소리에 아래를 보니 낙엽이 수북하다. 시선을 올려 나무를 보니 아직까지도 버티는 잎들이 많다. 저 잎들은 아직 살아있을까. 너희도 떨어지면 말라가겠지. 자세히 보니 이미 말라버린 잎들도 제법 달려있다. 나무가 아직 놓아주지 않는가 보다. 다시, 바닥에 떨어진 잎들을 들여다보니 삶처럼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이미 마를 대로 말라버린 녀석들도, 아직 초록 생기가 빠지지 않은 아이들도 보인다.

 길에서 만난 이 친구들에게 이름을 붙여보기로 한다. 떨어졌으니 낙엽(落葉)이고, 말랐으니 고엽(枯葉)이라 부를까. 사실, 이 둘은 다르지 않다. 낙엽이든 고엽이든 시작이 다를 뿐, 이 둘은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나아가고 서로가 되어간다. 구분은 이미 의미가 없다. 어차피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이 시답잖은 생각은 사실 “Autumn leaves”라는 노래 한 곡에서 출발했다. 가을 잎인지 떨어지는 잎인지 매년 제목을 혼동케 하는 노래이다. 영어로 된 가사는 첫 마디가 'Falling leaves'로 시작된다. 가을 잎은 당연히 떨어지는 잎, 낙엽이다. 설명이 더 필요할까. 영어 버전으로 여러 가수들이 노래했지만, 원곡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프랑스어 원곡 제목은 "Les Feuilles Mortes", 해석하면 ‘죽은 잎’이다. 어느 한국 가수가 이 곡을 "고엽"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리키는 대상은 하나이다. 지금은 푸르러도 가을이 오면 결국 말라버릴, 떨어질 미래가 확정된 잎. 이는 가을 잎이며 마른 잎이고, 떨어지는 잎이며 죽은 잎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낙엽, 그 모습과 만난다. 그 잎을 생각하니 슬프다. 아니, 괴롭다. 이미 말라버린 잎이 외롭게 떨어지는 장면도, 아직 살아있는 잎이 바닥에 떨궈져 서서히 말라가는 장면도. 싫지만, 나는 목격자가 되어야만 한다. 매년 이맘때면, 이 떨어지는 잎을 주변으로 모아 듣는다.

 나무와 잎은 이토록 비극적 관계이다. 더욱 사랑할수록 그렇다. 잎은 나무에게 살아갈 힘을 주지만, 결국 나무는 잎을 떠나보내야 한다. 때는 가을일 수도, 아직 차지 않은 때 일수도 있다.

 나에게도 낙엽이 있었다. 미성년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뇌졸중으로 인한 뇌경색이 병명이었다. 내 앞에서 쿵 쓰러지던 그 순간이 기억난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더 빠르게 조치를 취하고 병원에 갔지만, 아버지가 맞이한 실제는 이론 밖에 있었다. 숨은 붙어있지만, 뇌는 죽은 상태.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주변에서 말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말라버린 잎이었다. 나는 나에게서 그 잎이 떨어지기를, 제발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울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잎이 떨어지기까지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 그 단어를 수없이 적어 보았지만 단 한 번도 부를 수 없었다.

 몇 달 전, 한 잎을 또 떠나보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남들에 비해 조금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마침내, 기다리던 결실이 생겼다. 아버지가 된다는 그 기분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내 삶을 넘어 세상까지도 아름다웠다. 태명은 ‘큰 기쁨’이었다. 그 존재만으로 너무 기뻤으니까. 어느 날, 의사가 ‘유산’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가망이 없다. 각오해야 한다.’라는 시쳇말과 함께. 아직은 살아있는 잎이었다. 생명을 이뤄가던 시간보다 잃어간 시간이 더 긴 아이였다. 그 생명을 억지로 떼어내야 했다. 냉장고에 붙여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초음파 사진 속, 밝게만 빛나던 빛이 점점 사그라지는 꿈을 계속 꾸었다. 만나지도 못한 기쁨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잎이 떨어져 나간 후, 내 삶은 어땠을까? 밤낮을 술로 지새며 하늘을 원망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일상이었다. 그 가운데에 변화는 있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슬퍼했고, 더 좌절했으며, 더 배고팠고, 더 졸렸다. 다른 변화도 있었다. 나는 더 보았고, 더 들었으며, 더 생각하고, 더 기대하며, 더욱 꿈을 꾸었다. 살아지던 삶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어갔다. 오히려 더 살아있는 듯 살게 되었다.

 나무도, 사람도 삶은 지속된다. 가을이 지나 잎이 다 떨어졌어도,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 잎과 가지를 다 꺾어 놓았어도, 거센 바람이 나를 벌거숭이로 만들었어도, 여전히 그 자리가 아파도, 나는 살아있다.

 낙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낙엽은 나에게 상처만 남기고 떠나간 묵은 과거일 뿐일까. 이미 떨어진 이상, 나무에게 낙엽은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사람이 묻히면 자연으로 돌아가 흙이 된다. 낙엽도 그러하다. 흙 위에 낙엽이, 그 위에 다시 시간이 쌓이면 낙엽은 부엽(腐葉)이 되고 자신이 누운 그 평범한 토양과 섞여 부엽토(腐葉土)가 된다. 이 기름진 토양이 머금은 양분으로 다시 힘을 얻으며, 잎을 잃은 나무는 살아간다. 아픔은 잊히고, 상처는 치유되며, 기억은 경험이 되어 나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새 잎이 난다. 엽생(葉生)은 그렇게 이어진다.

 올해도 가을이 왔다. 잊고 싶은 기억들, 어쩌면 기억해야 할 과거들이 아픔으로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낯설게도 아프지만, 새 한해를 준비할 때이다. 빗자루를 손에 쥐고 흩어진 낙엽을 우리 주변으로 소중히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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