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관_천수호


아버지께 업혀왔는데

내려보니 안개였어요


아버지 왜 그렇게 쉽게 풀어지세요

벼랑을 감추시면

저는 어디로 떨어집니까


중앙일보 사설란은 ‘시가 있는 아침’이라는 코너로 시작한다. 먹먹하다. 시를 읽고 떠오른 단어이자 감상이다. ‘먹먹하다’라는 단어를 조금 더 알게되었다.


‘아버지께 업혀왔는데

내려보니 안개였어요’

내가 업혀있었다는 것을, 나를 업어준 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갑자기 알지는 못했다. 안개처럼 서서히, 기분나쁘게 조금씩 알게된다. 안개 속에 떠있던 발이 땅에 슬쩍 닿을 때쯤에서야, 나는 온전히 내 발로 서게 된다. 내 몸이 이리더 무거웠던가


‘아버지 왜 그렇게 쉽게 풀어지세요

벼랑을 감추시면

저는 어디로 떨어집니까’


왜 그리 쉽게 풀어지냐는 말은 원망보다는 울먹임이다. 억울함이다.

나를 때렸든, 사랑했든, 어떤 모습이었든,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떨어졌고, 떨어지고 있으며, 떨어질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벼랑이었다. 가까이 가고싶지도 않고, 내려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는 떨어질 벼랑도 없다. 살아있을 때는 몰랐다.

노력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있었다. 이제 무슨 수를 써도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다. 정확히는 11년이다. 이제 갓 삼십대의 막내에서 탈출한 나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신 편이다.

그때문일까, 나는 죽음에 대해 담담한 편이다. 무감각하지는 않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남은 이들은 삶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남겨진 자 이지만, 남은 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오늘도 문 앞에 놓인 신문을 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