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유시민씨가 2013년 시점에서 답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씨가 쓴 책중 세번째로 읽은 책이다.

유시민씨가 이 책을 쓴 동기는 간단하다. 정치계를 떠나고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되며, 출판사로부터 책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안고 책을 써달라는 의뢰였다고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할 수 있을법한 질문이지만, 시원하게 답할수 있는 이가 누구일까.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은 것도 그 이유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을까. 좋을까. 바람직할까. 삶이라는 것에 옳음이 있는 것일까.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 등등. 어떤때는 알겠다가도, 나이를 먹고 새로운 관계와 상황이 설정될때마다 다시 고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삶’이다. 궁금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의 제목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였다면 아마 이 책에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작가가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하고, 지금도 그를 더듬고 찾아가며 확정하고 흔들려가는 과정 가운데에 쓴 책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책을 펼쳤다.

도 삶에 대한 엄청난 진리를 담고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보지는 않았다. 단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하고 생각하는지를 읽었다. 그로 족했다. 맞다, 맞어 하며 동의로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있었고, 동의되지 않아 갸우뚱 하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참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씨는 참 폭이 넓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배는 왜 고픈지, 결혼은 왜 하는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이런 류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 사람들은 많다. 문제는 이상한 개똥철학만 늘어놓다가 끝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맞는거니까. 내 경험으로는 이랬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일관성이 없고, 묘하게 설득력은 있는데 인정은 안된다.

확증편향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람들은 여러 상황에 놓이지만, 그 경험들이 자신이 해석하고 싶은 하나의 확증을 설명하는 편향된 근거로 자리잡는다. 50살이 될때까지 100번정도 나쁜남자를 만나 차였다면, ‘남자는 다 쓰레기다.’라는 확증에 근거1, 근거2....근거100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매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랄까. 소위 인생선배들이 하는 말중 많은 경우가 그렇다. 나는 이랬고, 내 상황은 이랬어. 그러니까 너는 이렇게 해야해. 당장은 고개를 끄덕여도 나중에는 의문이 생긴다. 왜일까.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우리 부모님은 당신의 부모님과 같지 않으니까. 환경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니까. 결국 조언받은대로 살아가려면 뭐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 결국 그렇게 된다. 물론, 배울점만 심플하게 참고해서 나에게 적용하면 상관이 없다.

앞에서 유시민씨가 폭이 넓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유시민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이렇다. 왜냐하면 이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는 다를 수 있다.’ 내가 어떠한지와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설명한다. 일반적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특수 상황을 잘 설명한다. 설득하거나 우기지 않는다. 홍세화씨의 ‘생각의 좌표’에서 읽은 아이디어를 빌리면, 지금 나에게 형성되어있는 생각은 대체 어디로부터 근거되어 왔는가를 알고있는 것이다. 

유시민씨는 그것이 절대적 진리라고 우기지 않는다. 나다움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생각의 근거가 단단히 서있다. 그러면서도, 고집하지 않으니 유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생각을 설명하는 근거에는 임상과 경험도 있지만, 생물학적 근거들도 적지 않게 보인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현재까지는 제3자 사이에서도 객관적으로 맞다라고 인정되는 사실들을 잘 조직하여 설명한다. 설명했다기 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폭이 참 넓어. 보인다.


책에서는 삶에 대해 생각하기 이전에,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먼저 짚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삶의 시작과 마지막 가운데를 어떻게 가치있게 살아야할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가치없는 것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말한다. 마지막은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 삶의 마무리로 글을 마친다.


유시민씨는 사상가가 아니다.(사상이 없다거나 부족하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스스로를 작가라 했다.) 사상을 정리하여 책으로 낸 것도 아니다. 위에 말한것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유시민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답했구나 라는 것으로 족할 듯하다. 십년 후에 다시 이 질문을 받으면 조금 예시나 답변들이 더 날카로운 방향을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 제목을 조금 더 유치하게 지어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유시민씨가 2013년 시점에서 답하다.’ 정도 되지 않을까. 물론 제목이 맘에 들지는 않는다.


나는 유시민씨가 아니고, 유시민씨가 가치있다고 한 모든것들이 내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삶이라는 질문에 담담히 답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족했다. 이제 나도 그 질문에 답할 차례인듯 하다. 내 스스로에게.


목차는 아래와 같다.

프롤로그|나답게살기

제1장|어떻게 살 것인가

제2장|어떻게 죽을 것인가

제3장|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제4장|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에필로그|현명하게 지구를 떠나는 방법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한 부분을 적음으로 글을 마친다.


그대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그대는 그 신념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아니라고 말하면 조금 비겁한 것 같고 그렇다고 하자니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질문 형식을 바꾸어 보자. 신념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런 삶이 훌륭하다면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신념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 훌륭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것은 훌륭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훌륭한 신념을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그 신념을 위해 살고 죽어야 하는 것 역시 아니다. 신념을 위해 살고 죽는 것도 훌륭한 인생일 수 있지만, 그것과 다른 인생 역시 얼마든지 훌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

막상 블로그를 쓰려니, 찍어놓은 사진이 한장 뿐이다.


책은 연남동에 있는 서점리스본에서 구매했다.

친구가 근처에서 찻집을 하는데, 문이 닫아 근처를 돌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들어갔다.

이에 대한 포스팅은 나중에...


사실, 베스트셀러(?)류의 책은 좀 지난 다음에 읽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익히 호평을 듣고 있었는데, 장모님이 사주셔서 읽게 되었다.


저자인 한동일 선생님이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에 대해 강의한 수업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책 제목 답게 1강, 2강, 3강 이런 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한 강씩 끊어서 읽어도 괜찮을 듯 싶다.


말 그대로 라틴어 수업에 관한 책이지만, 라틴어 문법이나 단어를 구구절절이 적어놓거나 설명해 놓지는 않았다.

라틴어를 통한 사유, 인문학 서적에 가깝다고 할까.

우리가 몇번 들어봤거나, 혹은 생소한 사자성어 및 한자로 인사이트를 풀어놓은 책이나 글은 흔히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라틴어에 대해 수업을 하며 그 의미를 조금씩 편안하게 풀어놓는 책이다.

외울 부담 없이, 한강 한강 느끼며 편안히 듣는 수업이다.

단, 다음 수업이 궁금해지는 좋은 수업이다. 심지어 첫강은 휴강이다.


모든 언어가 통하지만, 라틴어는 여러 언어의 뿌리가 되는 언어이다. 그래서 더 생각하고 깨달을 것이 많은 것일지도.

캄보디아 출장 길 비행기에서 다 읽어버렸다. 쭉 편하게 읽으니 네시간 정도면 읽을 정도로 잘 읽히는 글이다.


책의 머릿말과 후반에 서강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쓴 편지들이 있는데, 그 중 한명이 아는 사람이어서 깜짝 놀란 책이기도 하다.(이건 개인적으로)


결론을 말하면, 라틴어 수업이다. 라틴어와 그에서 나오는 저자의 인사이트를 공감되게 편안히 풀어놓은 책이다.

옆에 놓고 생각날때마다 아무 곳이나 부담없이 펼쳐서 또 보고 싶은 책이다.

라틴어가 아니더라도, 다른 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한 책이다.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적음으로 맺는다.

"진리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외부의 힘에 의해 고개를 숙이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강압에 못 이겨 순종하는 진리는 이미 진리가 아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