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세례 - 이익상 저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 그중 '흙의 세례'를 들었다.

이 소설은 엄효섭 배우님이 읽으셨다. 사실, 이름만 들어서는 누군지 알기가 힘들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얼굴을 보니, 드라마에 자주 나오시는 분이었다. 얼굴을 보니, 이 분과 마주앉아 읽어주는 느낌이 든다.

1925년 문예지 개벽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며, 낙향한 지식인 부부의 이야기이다. 지식인의 자기모순과 한계를 나타냈고, 귀농후 아무일도 하지 않는 남편 명호와 열심히 해보려는 아내 혜정의 작은 갈등 이야기를 그린다.

위 간단한 설명은 오디오북에서 엄효섭 배우님이 읽어주신 것을 참고했다.

듣던중 집중하게 되는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주로 남편 명호의 생각을 독백처럼 읽어주는 부분이었다.

1

명호는 항상 자기가 자신의 행동을 조종할 만한 의지의 힘이 박약하여 필경은 아무 긴장한 맛이 없는 생활조차 마음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의지가 박약한 것만이 원인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일과 또는 귀와 눈에 활동이 있는 이상에는 반드시 아니 보이고, 아니 들리면 아니 될 여러 가지 사상이 도리어 자기라는 육(肉)과 영(靈)의 화합이 아니오, 혼합인 덩어리를 절망의 구렁으로 떠미는 것이 생에 대한 권태를 일으키고, 이 권태가 다시 얼마 남아있지 못한 기력을 소모함인 것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다른 소위 승리자와 같이 무엇이든지 이기고 나아가지 못하는 이 섬약한 의욕에는 증오를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한 증오를 느끼게 됨도 그가 어떠한 동기로든지 무슨 충동을 받을 때의 일이오, 평상시에는 염두에 올리지도 않은 것처럼 태연해 보였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흐리멍덩한 것은 결코 그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때에 냉정히 자신을 비판할 때에는 자신에 반드시 두 가지의 다른 형식으로 표현된 이중성격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의 불순을 느끼는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이 불순하여 보였다.

따라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처지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그에게는 제왕도 없었다. 모든 권력도 없었다. 이상도 없었다. 있다 하면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생활의 힘이었다. 날카로운 비수를 가슴에 댄다 하여도 그의 전 인격이 그것을 두려워함이 아니요, 다만 생활하겠다는 본능이 그것의 위혁(威嚇)에 전율할 뿐이었다. 이렇게 대담하면서도 어떠한 때에 곁에서 보는 사람이 웃을 만큼 쉽게 그는 희로의 감정을 나타내었다. 또는 자기와 친한 친구나 친척이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 오히려 눈썹 하나를 까딱하지 않고 “사람이란 죽는 것이니 할 수 없지. 언제든지 반드시 죽을 터이니까…… 그가 사람인 이상에는…….”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에게는 뜨거운 피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의심할 만큼 냉혹해 보였다. 그러한 대신에 어떠한 때이면, 소설 같은 것을 보다가도 눈물을 흘리게 되어 보드라운 감정을 가진 것도 보였다.


나는 무엇일까? 지금, 이순간까지 나를 형성해오고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철학이, 누군가는 종교가, 누군가는 함께한 사람에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았다.
그런 앎과 깨달음이 지금 내 삶의 모습과 나아가는 방향에 일치된다면 어찌나 좋을까. 명호는 지금 그게 안되나보다. 

"여러 가지 사상이 도리어 자기라는 육(肉)과 영(靈)의 화합이 아니오, 혼합인 덩어리를 절망의 구렁으로 떠미는 것이 생에 대한 권태를 일으키고, 이 권태가 다시 얼마 남아있지 못한 기력을 소모함인 것"

하..! 하고 감탄한 부분은 '화합이 아니오, 혼합인 덩어리'라는 것이다. 부품들의 합과 완성품은 다르다.
모인 부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완성품이 될지 알기 어렵다. 복잡한 물건일수록 그러한데,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어떠할까.
화합되지 않은 사상들은, 기대와는 달리 그저 혼합된 덩어리와 같다.
자동으로 어떠한 형체를 갖춰주면 좋으련만, 덩어리에 불과하다. 노력이 부족한 탓일까.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을 보니 그러한 것이다. 현실은 이상에서 참 멀다.


2

그러면요 "지금 하는 일은 장래에 생활을 얻으려고 미리부터 준비하여 두는 노동의 연습이라 하면 어떠할까요. 그러면 우리의 지금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일평생 사업으로 여기고 노력하는 사업의 신성을 더럽히는 일이 없게 되겠지요. 그리고 자기가 생활에 대한 어떠한 기능을 얻게 되는 셈이겠지요.”

명호의 말이 끝나매 혜정은 빙그레 웃으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신성한 직업을 유희로 아는 것과 같은 모독은 없겠지요. 우리의 태도를 변호하는 말만이 물론 아니겠지요.”하였다.

명호도 따라 웃었다.

명호는 농촌으로 돌아오던 날부터 마음속에 여러 가지 갈등과 모순을 느끼었다. 이것은 자기의 일한 보수가 넉넉히 생활을 지탱치 못하고, 다만 부모의 약간 유산으로 그날을 지낸다 하면, 도리어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하여 일하는 직업의 신성한 것을 모독함이 아닌가 생각함이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 하였다. 농촌에 파묻히는 그것 보다도 자기에게는 적당한 다른 무엇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핼쑥한 살 밑에서 새파란 심줄이 줄기줄기 비치는 손을 들여다볼 때에 또는 아내의 고운 얼굴빛과 연약한 태도를 바라볼 때에, 그러한 느낌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리고 또 그 사상으로써 톨스토이의 참회 생활 가운데에 농부 노릇한 것과 또는 일본의 어떠한 장군이 농부를 모방하여 똥통을 매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직업을 유희시한 것이라 하여 위선이라 단정을 내린 자신으로, 이러한 모독을 다시 하게 된 것을 인생의 어떠한 보복이라 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이 사회에 대한 조그만 불평, 또는 여러 사람 가운데에 뜻을 얻지 못하였다는 실망 그것만으로 온 인생에 대한 자기의 인생관이 변하여, 이러한 농촌을 찾게 된 것은 냉정한 생각이 그를 에워쌀 때에는, 그러한 소극적인 행위를 그의 양심은 부인하였다. 그리고 또는 자신으로 ─ 어떠한 개념 생활에 열중하였던 그로서, 한편 호주머니에 폭탄을 넣고 다니는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한 것은 큰 유감이었다. 그의 천연의 유나(柔懦)한 성격이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는 항상 혼돈한 사회에서 몹시 자극받을 때에는 어떠한 테러리스트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극단이라 할 만한 은둔적 생활을 하는 것이 자신에 배태(胚胎)한 생명력을 신장시킴이라 하였다.

명호는 이 두 가지를 두고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 그는 T라는 남쪽 나라의 따뜻한 지방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하여는 처도 찬성하였었다. 이와 같이 테냐 퇴(退)냐 하는 갈림길에서 퇴를 취한 그로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의 직업 모독함이라 하는 데에서 그동안 오래괭이 잡기를 주저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하는 일은 장래에 생활을 얻으려고 미리부터 준비하여 두는 노동의 연습이라 하면 어떠할까요.
그러면 우리의 지금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일평생 사업으로 여기고 노력하는 사업의 신성을 더럽히는 일이 없게 되겠지요. 그리고 자기가 생활에 대한 어떠한 기능을 얻게 되는 셈이겠지요.”

어떠한 동기 혹은 인과에 의해 지금 나를 설명해야할 때가 있다.
그 원인이 의지와 능력이 부족해서일 경우 나도 모르게 핑계를 대고 만다.
내가 선택했지만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다면 강제와 무엇이 다를까.
그 강제되는 상황이 '나'라면 속이 터질 것이고, 세상이라면 억울하겠지만 어려움은 혼자만 오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적어도 나는 핑계를 댄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있을꺼야! 하고.


농촌에 파묻히는 그것 보다도 자기에게는 적당한 다른 무엇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핼쑥한 살 밑에서 새파란 심줄이 줄기줄기 비치는 손을 들여다볼 때에 또는 아내의 고운 얼굴빛과 연약한 태도를 바라볼 때에, 그러한 느낌이 더욱 간절하였다.


원하지 않았던 선택에는 항상 뒤에 숨어있을것만 같은 다른 의미가 담긴다. 막연한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지만, 때때로 믿음에 의심이 생긴다. 내 손에 있는 새파란 심줄이나, 아내의 연약함을 내가 보아버렸을 때처럼.


3

“나는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한 모험할 성격이 없는 것은 큰 유감이다. 명예와 공리만을 위하여 인간의 참생활에서 거리가 너무나 먼 단적 문제에만 구니(拘泥) 하는 이매망량(魑魅魍魎) 과는 언제까지든지 길을 같이할 수 없다. 나는 그러한 비열한 생활 수단을 취하여 사회적으로 성공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야심을 속이지 않고 진실한 내면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실패자가 됨을 도리어 기뻐한다.

나는 이 첫 시험을 다른 사람의 직업의 신성을 더럽혔다. 그러나 나는 내의 생을 개척하는 길은 다만 여기에 있음을 믿은 까닭에, 때의 늦음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는 첫 연습을 하였다. 첫걸음을 배웠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영원히 우리의 시달린 영(靈)을 잠재워줄 것으로 믿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세상에 믿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 생활을 다시 핍박하는 그때가 오면, 나는 다시 이곳에 불을 놓고 밭을 헤뒤치고 논을 내버리고 표랑의 길을 떠나자! 그러할 때에 같이 갈 이 없으면, 나는 혼자 가자!

끝없는 곳으로. 그러다가 들 가운데에 거꾸러져 죽어도 좋고, 바다에 빠져도 좋다! 나는 그때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때를 도리어 반겨 맞이하자!

그때야말로 내외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줄 터이니까……. 그러나, 그러나 오늘의 흙냄새는 사향(麝香)보다도 더 향기로웠다. 나는 언제든지 그러한 흙냄새를 맡고 싶다……. 나는 비로소 흙의 세례를 받았다. 흙의 세례를 받았다.”


"나는 그러한 비열한 생활 수단을 취하여 사회적으로 성공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야심을 속이지 않고 진실한 내면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실패자가 됨을 도리어 기뻐한다."

희망과 믿음이 아닌 집착과 아쉬움으로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자리는 좁아지지만, 다음 걸음을 도무지 내딛지 않고 눌러앉는 이들이 있다.
명호는 사회적 실패자가 됨을 기뻐했다. 적어도, 이 부부의 입장에서는 농촌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더 삶에 진실된 행동이었기에.


"끝없는 곳으로. 그러다가 들 가운데에 거꾸러져 죽어도 좋고, 바다에 빠져도 좋다! 나는 그때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때를 도리어 반겨 맞이하자!

그때야말로 내외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줄 터이니까……. 그러나, 그러나 오늘의 흙냄새는 사향(麝香)보다도 더 향기로웠다. 나는 언제든지 그러한 흙냄새를 맡고 싶다……. 나는 비로소 흙의 세례를 받았다. 흙의 세례를 받았다.”

그 때를 기다린다. 그 때가 올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 때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오늘 내가 밟는 향기로운 흙이 그 때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
명호는 흙의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구원의 순간을 맞이했다.


Fin

혜정은 신문을 한참 아무 말 없이 굽어보다가 남편을 불렀다.
이것 보세요 정숙이가 “ . 벌써 시집을 가서 훌륭한 가정의 주부가 될 모양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혜정은 신문을 자기 남편 앞으로 내놓았다. 명호는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S신문의 가정란에 서양식으로 꿈인 서재를 배경으로 삼고 박은 정의 부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기사에는 두 사람이 다 사회적으로 의의 있는 사업을 한다는 것이 조금 과장적으로 쓰였었다. 그리고 특별이 정숙은 여류 문학가라는 것을 기재하였다.
“벌써 정숙이가 사회에 명망 있는 여류 작가가 되었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근본이 다른 것이에요!”
“왜요?”
“정숙이는 저보다 나이도 어리지마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사람의 참속은 모르고 지내왔어요. 졸업한 뒤에는 물론 서로 그뿐이었지요.”
명호는 이와 같은 처의 말에는 어떠한 의욕이 이것을 말하게 한 것을 알았다. 그의 마음에도 아직도 자기 명망이란 것을 무엇보다도 좀 더 날리어 보자는 본능이 대단 굳센 것을 짐작하였다. 이것을 상상할 때에 명호의 마음을 점령한 고적은 그 두 동갑 되는 힘으로 그를 괴롭게 하였다. 명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혜정은 가만히 앉아 신문을 보다가,
“우리가 이대로 여기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아무 알 사람이 없겠지요. 이 동리 사람 외에는, 그리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겠지요? 그저 어떠한 늙은이와 늙은이가 살다가 죽었다고 하겠지요? 혹 자손이 생긴다면 그것들이 조금 섭섭한 생각을 하다가 얼마 지내면 그대로 잊어버리겠지요, 네?”
명호는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그들은 정신이나 육체에 한가지로 피로를 느끼었다. 어둠의 장막이 고적과 싸우는 두 혼을 덮었다.


흙의 세례로 구원을 받았다 생각했건만, 새로운 상황은 다시 이 부부를 흔든다. 나와 같은 위치에 있던 누군가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말이다.


"그들은 정신이나 육체에 한가지로 피로를 느끼었다. 어둠의 장막이 고적과 싸우는 두 혼을 덮었다."


구원은 받았으나, 그 구원을 끝까지 이뤄내기는 이토록 어렵다. 기쁨과 깨달음의 뒤에는 항상 실망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다. 진리를 알아도, 진리대로 살아가기는 참 어려운 것처럼.

부부는 무얼 깨달았을까, 마지막으로 보인 모습은 어둠이다. 어둠 안에 두 혼이 갖혀버렸다.

아마 다시 빛이 어둠을 가를 것이고, 어둠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기대하는 바는, 이 흔들리는 과정마저 그 때를 위한 준비였으면 한다.

그래서, 그 때를 보았으면 좋겠다. 이 날을 위한 준비였구나. 하며 슬며시 미소지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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