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커피를 한잔 내려 들고 르디플로가 들어있는 흰색 포장봉투를 뜯었습니다. 무심하게 내용물을 꺼내자, 그 안에 숨어있던 종이 한장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존경하는 독자님께'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종이였습니다. 올 10월로 1년 정기구독이 만료된다는 소식을 전하는 편지 아닌 소식이었습니다. '아, 벌써 일년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다음장을 펼치자 편집자께서 쓰신 글이 있었습니다. 르디플로가 탄생한지 10년 하고 1개월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생각지 않은 잽 한방, 그리고 카운터 한방을 연이어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고백하면, 사실 정기구독이 끝나면 연장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홍세화 씨를 좋아합니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민망할만큼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작년이었던가요. '홍세화의 공부'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거의 출간되자마자 구매해서 단숨에 읽어내려간 기억이 납니다. 르디플로의 이름을 읽고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제 인식 가운데에서는 말입니다. 웃긴 일이지요. 홍세화씨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시간은 제법 되었는데, 르디플로의 이름을 이제서야 처음 들었다는 것이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다시 인증한 셈입니다.

 그 시점 이후로 르디플로 홈페이지에 하루에 몇번씩 들어가보며 구독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고민 가운데 다시 부끄럽게도 가장 먼저 손에 든 것은 계산기였습니다. 얼마를 내야 하는가가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얼마를 내야 하는가 보다는 그 금액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고 이야기해야 조금 더 사실에 가까운 표현일 듯 하네요. 저는 한 작은 국제개발협력NGO에서 '개도국의 엄마와 아이들을 영양적으로 돕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제가 한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기에 돕는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의 여러 가치있는 일들이 그렇듯 수입은 그에 반비례하는듯 합니다. 몇년전 기준으로 후하게 쳐도 최저임금을 채우지 못하는 돈으로 아내와 함께 한달을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돈을 버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불편은 하지만 살아갈만 합니다. 르디플로를 구독하는데 감당해야 하는 금액은 그 불편함 중에 하나였지만, 불편을 감수하고 르디플로 정기구독을 시작했습니다. 불편을 감수했던 불순한 동기들중에 지적 허영심과 프랑스에 관련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호감이 가는 성향도 한몫 거들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나름 International한 직종에 종사함에도 불구하고 르디플로에서 처음 듣는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관심을 둘 시간과 노력이 부족하여 제목과 내용만 훑고 지나간 적도 있었습니다. 무지하여 읽기가 어려운 기사도 있었습니다. 내용과 표현에 조금 불편함을 느꼈던 기사도 있었지만, 또 어떤 기사에는 또 매료되어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에 한달 내내 들고다니며 꺼내들고 읽기도 했습니다. 바쁘고 또 정신이 없던 달에는 도착한지 한참을 지나서야 흰색 포장비닐을 벗긴 기억도 있습니다.

 일년이 지나면 다시 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텐데, 조금은 편해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선택에 순간에 빨리 섰고 서두에 말한 것처럼 잽과 카운터를 맞게 되었네요. 제가 받은 지난 정기구독의 마지막 호가 이번 10월호가 아니었다면, 별 고민 없이 구독을 중단했을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마지막에 또다른 10년을 준비하시는 편집자님의 꿈을 듣게 되었네요. 아마도 제가 믿는 하나님이 '구독연장해라.' 라고 말씀하시는 듯도 했습니다. 편집자님의 꿈꾸시는 미래의 지분에 조금 손을 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래서 기분좋게 불편을 한번 더 감수하게 되었습니다.

르디플로가 최고에요. 완전 팬이에요. 라는 식의 응원은 하고 싶지도 않고, 아마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종이마다 성향이 있지요. 저는 아마 르디플로 혹은 여기에 글을 담은 분들의 성향과는 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흔히 메이저 신문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하나를 구독하여 보고 있습니다. 검색만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기사들이지만 매일 아침 그 소식들을 모아서 볼 수 있기에, 종이가 더 좋기에 신문을 봅니다. 그 메이저 신문에 써있는 글은 잘 읽힙니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슥슥 눈으로만 훑어도 어떤 일이 세상에 있었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인스턴트 간편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요? 르디플로를 그에 비교한다면 조금 까다로운 음식이지 싶습니다.(아프리카 대륙 마다가스카르의 작은 섬 세인트마리에서 먹은 프랑스풍의 초록색 문어요리가 생각나네요. 아내는 입도 못댔지만 저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맛을 음미하려면 자리에 딱 앉아서 꼭꼭 씹어야 맛도 알고 소화도 시킬 수 있는 음식들을 한달에 한번씩 배달받는 느낌이랄까요. 때로는 씹지 못하기도, 소화를 못 시키기도 하는 음식도 있지만 그 음식의 존재 자체가 참 좋습니다.

칼럼과 에세이에 글을 보내시는 분들이 자기를 소개하듯, 저 또한 글을 읽고 쓰며 살아가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나와 세상에 대한 고민을 저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고민의 색은 르디플로와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그 방향은 아마 한 곳을 보고있지 않을까 합니다. 흔들리고, 어지럽고, 힘이 들 때 르디플로를 보며 내가 어디를 보고 있었나를 확인하고 조금 멀리 시선을 옮겨 보기도 합니다.

이 글이 방향을 더 잃기 전에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부담이 아닌 작은 응원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썼습니다.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신다는 2면의 글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아 답장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구요. 우연과 과정이 묘하게 섞여 느끼게 된 오늘을 그냥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작 1년 연장하면서 생색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 아닌, 꿈꾸시는 미래의 작은 몫을 감당한다는 마음으로 구독을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응원합니다. 그리고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10월의 토요일, 르디플로 독자중 한 사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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