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커피, 그제와 마찬가지로 블로보틀의 Three africas이다.

그저께는 고노 드리퍼로 내렸는데, 오늘은 케맥스로 내려봤다. 맛은 깔끔해졌지만, 향이 덜해졌다. 취향차이일 수 있겠지만, 향이 풍푸한 원두는 역시 고노가 나에게는 답인듯 하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싫지는 않지만, 커피가 품은 여러 향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너무 크다. 물론, 주인공을 빛낼 만한 풍부한 조연이기에 그렇다. 가끔 조연이 욕심을 내서 주인공이 죽는 경우가 있다. 잡맛이 강한다고 표현하는듯 하다. 주인공을 살리는 조연, 커피의 맛과 향은 그런 관계가 아닐까.

—-

잔은 중국 곤명에서 산 스타벅스 잔을 썼다. 그냥 여기 먹어보고 싶었다. 책은 황현산 선생님의 ‘우물에서 하늘보기’ 우연히 발견한 보석같은 분이다. 인성도 모르고 삶도 모르지만, 글만으로 어느정도 알 수 있다.

—-

누군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어느 때 먹는 커피가 제일 맛있냐고 말이다. 미리 생각한 질문은 아니지만, 단번에 답을 했다. “토요일 아침 10시”에 먹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말이다.

허영만씨의 ‘커피 한잔 할까요’라는 만화에서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커피에 갑자기 빠진 CEO가 회사에 고급 커피원두와 머신을 들여놓는다. 직원들이 매일 밖에 나가 사들고 오는 커피가 싸구려 맛없는 커피니까, 회사 안에 있는 좋고 맛난 커피를 먹으라고 한다.

그런데, 직원들은 불만이다. 무언가 생각처럼 맛이 없다. 만화의 주인공은 그 이유를 찾는데, 결론이 재미있다. 커피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먹으러 잠시 밖을 밟고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직원들에게는 중요했던 것이다. 회사 안에 있는 좋은 원두가 아니라, 여유와 대화가 직원에게는 중요했던 것이다.

토요일 오전 10시도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늦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맘껏 내린 커피, 책이나 신문이 있으면 더 좋고 말이다.

















사진을 올리고 보니... 커피인지 사약인지 구분할 길이 없어 보인다.

무얼 찍으려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오늘의 커피는 '카뮤블렌드' + 케맥스이다. 카뮤는 '카페뮤제오'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하면, 커피전문 온라인 쇼핑몰이다. 오프라인 매장도 있는데, 예전에 우연한 기회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방문시 느낌이 매우 좋았는데, 단순히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름처럼 커피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설명해줬던 매니저분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종종 이용하는데, 후기라든가 내부에서 답을 달아주는 것들이 아주 친절하고 재미있다.

카뮤블렌드는 이 카뮤에서 블렌딩해서 낸 원두이다. 드립페이퍼를 샀더니 시음용 50g을 보내주었다.

누군가 내게 어느 커피가 제일 맛있냐고 물어보았는데, 토요일 오전 10시에 마시는 커피라고 답한 적이 있다. 시간과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그것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에 오랜만에 맛보는 산뜻한 산미가 있었다. 특별히 맛있다 라기보다, 계속 마셔도 좋을 맛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생각이다'를 적는 시점에 커피를 거의 다 마셨는데, 한번 더 내려마실까 하는 고민이 계속 든다.)





커피를 내려마실때면 생각나는 시간이 있다. 꿈꾸던 공간과 시간. 누구나 그런 곳을 찾겠지, 나도 그 중 한명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에, 편안한 의자에 앉아있다. 흐르는 음악 위는 커피 향으로 메우고, 내 손에는 책이 들려 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생각을 놓쳐도 그 빈 부분을 음악 혹은, 향, 맛, 분위기로 메꿀 수 있는 그런 공간. 언제든 다시 책으로 돌아가도 또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시간. 기계적으로 생각해보면, 음악+커피+책+의자라는 공식만 따르면 된다. 그런 것들이 갖춰지면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 아니 기대한다.

이년 전인가... 이 분위기를 만들려다가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ㅋ 먼저... 자리를 세팅해놔야 하고 음악을 틀어놓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어떤 음악을 틀지 리스트업을 해놔야 한다. 커피도 내려야 했다. 당시에는 드립을 할 줄 몰라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리고 나니 설거지를 해야 했다. 결국, 책은 못읽고 분위기 만드는 노력만 들이고 끝났던 기억이 났다.

요즘은, 조금 자유로워진 편이다.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으면 된다. 커피 내리는 과정도 즐겁다. 원두를 고르고, 드리퍼를 고르고, 내린다. 고민하는 시간과 내리는 시간 과정, 어떤때는 귀찮지만, 대부분은 그 시간 자체가 좋다.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을, 아니면 끌리는 것을 들고, 아무 곳에나 앉는다. 침대도 좋고 의자도 좋다. 음악은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다. 틀고싶으면 틀면 된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이러다가 아내가 여보~ 부르면 내려가야 하겠지만ㅋ

대부분의 우리는 추상적 미래를 꿈꾼다. 갖지 못한 것을 기대한다. 그 미래라는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나도 모르게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그 체크리스트를 다 채우고 나도 허무한 이유는 그 시간동안 내가 꿈꾸던 기대와 조금 더 멀어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허나, 가끔씩은 느낀다. 삶의 목적과 수단이 일치되는 때가 지금 이순간임을 느낄 때, 다른 것들은 아무 필요가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