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친구는 흔히 말하는 클럽 DJ이다. 재미있는 컨셉으로 활동하여 검색하면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이다.(사실, 뭐든 검색하면 나오는 시대이긴 하다.)

문제는 친구가 카톡방에 봉을 잡은 여성의 일러스트가 담긴 포스터를 올렸고, 내가 못참고 지적질을 하여 벌어졌다.


내가 쓴 단어는 '천박하다'라는 단어였다.

나는 절대, 봉이든 뭐든 잡고있는 여성의 일러스트가 천박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여성이 천박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누드사진이 천박한가? 빨간 불 아래에 있는 누드사진은 천박한가? 무얼 들고 있느냐에 따라 천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사진은 사진 그 자체일 뿐이다. 일러스트도 마찬가지이다.


천박한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다. 그 대상을 이용하는 '이용자'인 사람이 어떻게 대상을 사용했냐에 따라 '천박'해질 수 있다.

'천박'하게 대상을 사용한 사람 자체가 '천박하다'라고 할 수 는 없지만, '천박'하게 사용했다라고는 할 수 있다.

친한 친구여서 강한 단어가 나갔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천박한 것인가?


의도성에 맞지 않게, 자극적인 사진이 쓰였다면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클럽 파티에 초대하는 포스터에 야한 사진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맥락과 상관없이 시선을 끄는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친구의 퍼포먼스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 친구가 가지는 격과 맞지도 않다.

그런 포스터로 홍보한 행사는 가고싶지 않다. 라는 개인적 취향도 있다. 


그 친구가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나중에 메인 스테이지로 나왔으면 좋겠다. 보통 인식되는 양지에도 음지에도 나와 즐거운 퍼포먼스를 펼치는 존재가 되었음 좋겠다.

그런데, 내가 담당자라면 그런 포스터를 쓴 사람을 우리 행사에 부르고 싶지는 않다.


마광수씨의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어려운 단어를 쓸 것도 없다.

내 아이와 부모와 친구와 아내가 보았을 때 당당한가? 당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면 문제가 없다.


대화를 지켜보는 친구들은 쓸데없이 예민하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지금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의지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하기 어렵다. 나이가 어려서이기도 하다. 누구는 때가 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좋든 싫든, 세대는 바뀌고 내 세대가 설 때가 온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지만, 훗날을 위한 준비이며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때라고 생각한 순간마저 과정일지 모른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그에 부끄럽지 않은 것인가.

숫자로 누군가를 누르는, '몇년짜리' 경력 덩어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하관_천수호


아버지께 업혀왔는데

내려보니 안개였어요


아버지 왜 그렇게 쉽게 풀어지세요

벼랑을 감추시면

저는 어디로 떨어집니까


중앙일보 사설란은 ‘시가 있는 아침’이라는 코너로 시작한다. 먹먹하다. 시를 읽고 떠오른 단어이자 감상이다. ‘먹먹하다’라는 단어를 조금 더 알게되었다.


‘아버지께 업혀왔는데

내려보니 안개였어요’

내가 업혀있었다는 것을, 나를 업어준 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갑자기 알지는 못했다. 안개처럼 서서히, 기분나쁘게 조금씩 알게된다. 안개 속에 떠있던 발이 땅에 슬쩍 닿을 때쯤에서야, 나는 온전히 내 발로 서게 된다. 내 몸이 이리더 무거웠던가


‘아버지 왜 그렇게 쉽게 풀어지세요

벼랑을 감추시면

저는 어디로 떨어집니까’


왜 그리 쉽게 풀어지냐는 말은 원망보다는 울먹임이다. 억울함이다.

나를 때렸든, 사랑했든, 어떤 모습이었든,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떨어졌고, 떨어지고 있으며, 떨어질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벼랑이었다. 가까이 가고싶지도 않고, 내려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는 떨어질 벼랑도 없다. 살아있을 때는 몰랐다.

노력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있었다. 이제 무슨 수를 써도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다. 정확히는 11년이다. 이제 갓 삼십대의 막내에서 탈출한 나는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신 편이다.

그때문일까, 나는 죽음에 대해 담담한 편이다. 무감각하지는 않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남은 이들은 삶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남겨진 자 이지만, 남은 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오늘도 문 앞에 놓인 신문을 편다.

중앙일보_20170920_노트북을 열며_어공과 늘공

http://news.joins.com/article/21952131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 '늘공'은 '늘상 공무원'이라고 한다.

보통 행정력을 갖춘 사람은 그 외 전문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필요해 의해 전문가를 영입하면 그는 '어공'이 되고 행정력을 가진 자는 '늘공'으로 그 자리에 항상 있다.

일은 전문가가 하지만, 보통 결정권자는 비전문가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간극이 있다.

또래 친구들이나 크고 작은 조직 중에서도 목표를 중시하는 어공이 있고 절차를 중시하는 늘공이 있다.

맞네 틀리네 하는 논쟁은 대부분 이 범주 내에 있다.

단기적 목표는 이룰 수 있지만, 궁극적 목적과는 반대로 가는 경우. 궁극적 목적을 추구하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


나는 무어가 맞다 할 수 없다. 둘다 필요하다.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정답은 나오지 않을지라도, 답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을 잘 끌고 가는 것이 앞으로 시대에 필요한 리더상 중 하나이지 않을까.

초대장 나눔합니다~

며칠이 지나도 초대장을 받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셔서 취소하고 나눕니다~

3장을 나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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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금)까지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에서 3분께 초대장을 보내 드릴게요:)


초대장을 받으신 분들은, 일주일 안에 꼭 첫 글을 써주세요~

일주일안에 시작 못하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쓰기 힘드니까요~

초대장 나눔합니다~

아래에 글을 남겼는데, 이미 받으신 분들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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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일)까지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에서 5분께 초대장을 보내 드릴게요:)


그리고 초대장을 받으신 분들은, 일주일 안에 꼭 첫 글을 써주세요~

일주일안에 시작 못하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쓰기 힘드니까요~

기종

맥북 터치바 15인치

https://support.apple.com/kb/SP749?locale=ko_KR&viewlocale=ko_KR


고장부분

왼쪽 스피커 불량(파열음)


수리지점

홍대 UBASE(홍대 프리스비 지점 2층에 위치)


수리 기간

맡긴 날짜: 2017.09.09(토)

수리 완료: 2017.09.13(수)



맥북을 사용하던 중, 갑자기 왼쪽 스피커에서 팍! 하는 소리가 났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냥 지나갔다.

이어폰을 끼고 작업을 계속 했기 때문에 이상을 못 느끼기도 했다.


한 이틀 후인 9.9(토), 오전에 집에서 이어폰 없이 작업을 하는데 왼쪽 스피커에서 파열음이 들렸다.

탁탁 튀는 팝핑 소리는 아니었고, 지지직 하는 파열음과 함께 소리가 났다.


집이 홍대와 가까와서, 홍대에 수리점이 있는지 검색한 결과

익히 이름을 들은 유베이스와 대우어쩌구 하는 지점 둘이 검색되었다.


대우어쩌구가 영업시간이 길었지만, 브랜드 네임을 믿고 유베이스를 방문했다.

창구가 몇개 있었는데, 그중 1번창구만 맥북 외의 기기를 수리하는 창구였고 나머지는 아이폰 수리 창구인듯 보였다.


토요일임에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기다리지 않았다.

번호표를 뽑자 거의 바로 내 번호가 호출되었거, 1번창구로 갔다.



1. 수리접수

증상을 설명하고, 음악을 하나 틀어서 들려주자 집에서와 동일하게 왼쪽 스피커에서 파열음이 났다.
파열음 증상을 직접 확인하자, 별 군말없이 AS를 받아주었다.
맥북을 구매한지 1년 이내였기 때문에 비용도 무상이었다. 비용 부분을 가장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2011인가 2012년도에 아이패드 3세대 수리를 받으러 간적이 있었다. 중고로 산 것이었는데, 홈버튼이 잘 눌리지 않는 것이었다. 보증기간이 남아있었고, 홈버튼이 작동하지 않는것을 영상으로도 찍어놓고 강변에 있는 유베이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유베이스에 가자 버튼이 제대로 작동하였다. 직원이 동서남북, 정면에서 각각 10번씩 눌러서 작동하는지를 확인했는데 제대로 작동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사정 설명을 하며, 찍어놓은 동영상까지 보여줬지만... 정해진 메뉴얼 안에서 확인이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그 메뉴얼이 방향별로 10번씩 눌러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픈 기억이 있다ㅠㅠ


이번에는 다행이 증상이 바로 보여서 AS처리가 되었다. 이전에는 섭섭했지만, 사실 납득할 수 있는 정책이긴 하다.


우선 데이터 삭제 동의를 나에게 구하고는, 포맷을 해서 안되면 부품을 교체하겠다고 설명을 들었다.
스피커가 하판에 붙어있어서 하판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뭔소린지 이해를 못했는데, AS후에 알게되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UAG케이스를 맥북에서 빼내는 것이었다. 본체만을 맡겨야 해서였다. 정말 안빠졌다.
유투브에 보면 쉽게 잘도 빼더만.. 사실, 잘 빼지는 것은 뉴맥북(12인치)과 13인치 맥북이긴 했다..

진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케이스를 뺄 수 있었다. 끼고나니 너무 편하고 좋았는데 빼기는 정말 힘들었다.


이후,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접수증을 받아나왔다.


2. 수리중

수리를 맡긴 후, 이틀 후인 월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다. 수리는 토요일에 맡겼어도 실질적 수리는 월요일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하판을 교체해야 하는데, 하판에 보호필름이 붙어있어서 동의를 구하려 전화가 온 것이었다.

어쩔수 없지 않냐고 답을 한 뒤, 어느 부분이 교체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키보드 옆 부분 팜레스트 부분이 없어진다고 했다. 겉에 붙어있는 것은 무사하다 했다.

혹시 스크린에 붙어있는 필름도 교체되는거냐 물어보니,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스크린에는 보호필름이 없어요"

나는 속으로 웃으며

"아, 알겠습니다. 진행해주세요~"
하고 끊었다.

힐링쉴드에서 안밖에 다 보호필름을 붙였고, 모니터에도 투과율100%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직원이 붙어있는줄도 모르다니..를 속으로 감탄하며, 만족감이 생겼다.


3. 수리완료

수리가 다 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다음날 점심시간에 맥북을 찾으러 갔다.
사람은 여전히 없었다.
직원에게 접수증을 주자, 내 맥북을 가져 나왔다.

정말 조심히 꺼내서 사방과 앞뒤에 혹시나 기스가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것이 메뉴얼이겠거니 생각했다. 정말 조심히 다룬다는 인상을 받았다.

포맷은 되어있지 않았다. 스피커도 잘 되는지 확인했다.

맥북이 얇은 헝겁 케이스에 담겨있었는데, 케이스를 안가져와서 그 헝겁케이스에 담아가도 된냐고 했더니 당연히 된다고 했다. 단지, 미끄럽다. 조심해야한다를 한 10번정도 이야기한 것 같다. 이것도 메뉴얼이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맥북을 담아온 얇은 헝겁 케이스, 기스정도만 보호할 수 있겠다.


4. 수리 후

집에 와서야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 키보드 사진은 찍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키보드 인쇄가 달라져 있었다. 캡스락에 한영이 서있고, 시프트나 엔터 기타 여러 키 인쇄모양이 바뀌었다.

요약하면, 위 사진 눈에 보이는 키보드, 스피커, 트랙패드, 터치바가 포함된 '하판 전부가 교체된 것이었다.

수리내역서에 보면

투입자재 : KH661-06377
부품: Top Case with Battery. ANSI, Space Gray, KOR 로 되어있었다.

아마도, 2017년에 새로나온 맥북터치바 키보드 디자인이 위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트랙패드, 터치패브, 키보드 등이 새버전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니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밖은 그레이 색이지만 안은 실버색인 맥북을 만들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마지막 요점정리

1. 애플 AS는 증상만 명확히 확인되면, 군소리 없이 해준다.

2. 유베이스 서비스는 좋다.

3. UAG케이스는 빼기 너무 힘들다.(쓰는 중에는 정말 편하다.)

4. 힐링쉴드 보호필름 (모니터 투과율100%)은 유베이스 직원도 모를 정도로 투과율이 좋다.(직원이 둔한 것일수도..)






초대장 나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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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름

윤이상 100주년 기념 콘서트


공연일시

2017.09.09


연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그리고 김수연


주최

경기도문화의전당 & 윤이상평화재단




내가 관람한 공연은 윤이상100주년기념 공연이다. 부끄럽지만, 윤이상이 누구인지  몰랐다. 아니, 알고는 있었다. 독특한 음악세계를  음악가라는 . 역사 픔을 생에 직한 인물이라는 . 대 아무한테나 맞춰 해도 들어맞을 법한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공연을 약한 이유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김수연이 연주 한다는 공연 식을 들어 예매 부랴부랴 했는데,  공연이 윤이상 100주 념공연이었다. 

 

윤이상의 음악을 들어본  있었다. '작은새' 억한다. 학부때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언급하여 호기심에 들었다.

바이올린 곡인데, 활을 한번 그을 때 새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듯한 음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소는 예당 콘서트홀이었다. 아내와 함께, 30분 정도 넉넉하게 일찍 도착하여 자리를 잡았는데, 시작 15분 전까지도 사람이 별로 안들어왔다. 시작 10분 전이 되자 사람들이 조금씩 차기 시작했다. 우리의 자리는 2층 중간이었다. 3층은 거의 비어있었고, 생각보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관람객들에 기억나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홀로 오신 백발의 노인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간혹가다 독일인처럼 보이는(서양인인데 왠지 독일인스럽게 생긴) 노인 분들도 계셨다.


오프닝

한 편의 영상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윤이상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영상이었다. 윤이상을 설명하는 키워드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사진과 음성이 더해진 영상이었다. 그의 음악세계, 그의 결백함(윤이상은 간첩 누명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동백림 사건이 그 내용이다.), 민족 화합에 대한 열망 등을 이야기했다.

아직 윤이상이 빨갱이네 어쩌네 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사실을 밝히어 적는 것이 중요하고, 판단은 시대와 또한 개인 몫이다. 어려운 시대의 피해자들, 그 중 한 음악가. 내 생각은 이뿐이다.



1부_경기필

<예악>_윤이상

<론타노>_리게티 죄르지

대관현악을 위한 환상적 무곡<무악>_윤이상

나는 음악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다. 조예 있으신 분들이 읽으면 헛소리일 수 있으나, 짧은 감상 정도를 남겨보려 한다.

<예악>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세가지이다. '박'(제례악에서 보이는 막대기 여러개가 붙어있는듯한 타악기), 첼로의 현 튕기기, 방울.

배경음악 같기도, 전시상황 같기도 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개인적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OST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을 칠 때마다 전투가 시작되고 끝나지만, 여전히 전쟁의 분위기는 깊어가고 전투는 스멀스멀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첼로 현을 튕기는 소리가 났다. 탁!타타탁!탁! 음가가 없는 불규칙한 소리였다. 총소리 같았다. 다시, 중간중간 방울이 울렸다. 악기 이름은 방울이 아닐 수 있다. 마치, 무당의 방울이 연상되었다. 전쟁, 암울한 상황, 총소리 가운데에 방울소리는 마치 굿 같았다. 무속신앙과 귀신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전쟁상황을 피하고 돌리려는 시도로 그 방울소리가 들렸다. 노력과 극복이라는 단어는 일부러 쓰지 않았다. 방울을 울려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상황이 나빠지지만 어두워지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방울을 드는 것밖에 없지 않았을까. 방울을 울리는 행위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저 기억될 뿐이었다.


<론타노>는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 건너 뛰고, <무악>으로 넘어간다.

인상에 남은 것은 한가지가 있는데, 바이올린 세 부류가 차례대로 음을 쌓아가며 연주하는 장면이었다.

빠른 속도로, A그룹이 a음을 긋는다. a음이 끝나기 전, B그룹이 b를 긋는다. 다시 끝나기 전 C그룹이 c를 긋고, 다음 차례는 A에게 돌아간다. 귀로 들리는 것은 그저 abc음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그 음들이 중첩되며 쌓이니 듣기에 묘히 좋았다. 나 혼자 '도레미도레미'를 반복할 수 있지만 음을 쌓을 수는 없다. 셋이 하면 가능하다. 경제적이지 않지만 그를 넘어서는 의미가 부여된다. 소리를 내는 세 그룹을 따로 눈으로 쫓다가 시선을 전체로 돌렸다. 세 그룹이 돌아가며 활을 긋는 형태에서 군무가 보였다. 곡명이 <무악>인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다.


윤이상의 곡을 고작 두곡 들었지만, 느낀바가 있었다. 재료에 맞춰 요리를 한것이 아니라, 완성된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갖다 쓴듯한 음악이었다. '내가 생각한 이 부분에는 이런 소리가 필요한데 요 악기를 이렇게 해서 표현하면 되겠다.'라는 식이다. 클래식이 아니어도, 무슨 형식이 아니어도 되는 음악이다. 첼로는 활로 켜서 음을 냄으로도 손으로 두드리거나 줄을 튕김으로도 연주된다. 그 소리를 내기 위해 반드시 타악기 중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다. 첼로여야 하는 이유가 있고, 두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반드시 첼로를 두드려야 그 소리가 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필요한 것이다. 비슷한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대체될 수 없는 소리이다. '나'는 '나'여야지 내가 된다. 세상 모든 존재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하나 하나의 소리도 마찬가지이며 그 소리가 있을 자리와 표현되는 방식까지도 그렇다. 윤이상은 그렇게 자신을 음악에 담았다. 담기는 것으로 모자라 넘쳐 흐르기까지 했다.


프로그램 북 에필로그에서 윤이상이 말했다.

"

나의 음악은 악을 멀리하고,

삶의 승리를 노래하고,

슬픈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인류사회에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의 고국의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나의 음악을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얻으시고

내가 절실히 원하는

평화적 사회와 민족끼리의 화해가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바라고

또 다 같이 노력합시다.

"




Intermission





2부_김수연 그리고 경기필 협연

L.v.Beethoven_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61

ⅰ. Allegro ma non troppo

ⅱ. Larghetto

ⅲ. Rondo-Allegro

김수연에 대해서는 딱히 할말이 없다. 그저 넋놓고 봤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봐도 별로 관심없는 나이다.

공연을 찾아본 적은 없다. 앨범 자켓 사진과 안에 수록된 연주곡으로만 김수연을 만나보았다.

바흐의 곡을 무반주로 연주한 앨범<J.S Bach:Sonatas & Partitas for Solo Violin>을 제일 좋아한다.(마치 클래식을 많이 듣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몇개 듣지 않는 앨범 중 하나이다.)


이날 연주한 곡은 이미 앨범 녹음도 이뤄진 곡이며, 수 없이 협연한 곡일 것이다. '느리면서도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자유로우며, 섬세하면서도 거칠고, 강하면서도 연약하다.'라는 이런 상투적인 말을 내가 하게될 줄이야. 그 모든것을 한번에 보인 것은 아니나, 곡을 통해 여러 모습들을 보았다. 높고 가는 음을 긋는데, 바이올린에서 빛처럼 음선이 선명하게 발사되었다. 그 많은 음들이 명확히 구분되며, 또한 흐르듯이 이어지는 연주였다. 김수연이 사용하는 바이올린은 (그 유명한)스트라디바리우스이다. 저 소리가 나오는 근원이 악기일지 실력일지를 고민해 봤지만, 그 악기를 연주할만한 실력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다.

김수연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본인이 택했든 코디의 작품이든 가을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드레스는 가을이지만 실내는 아직 가을이 아니었나보다. 긴팔의 드레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리고는 연주 사이에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적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앵콜요청이 있었다. 몇번의 요청 끝에 김수연은 '윤이상의 작은새 연주하겠습니다.' 라고 들릴듯 말듯 하게 말한 후 연주를 시작했다. 유일하게 알았던 윤이상의 바로 그 곡이었다. 잠시 잊고있던 작은새를 김수연이 데려왔다.

연주하는 그 순간, 주인공은 김수연이었다. 주인공이 앞을 보고 연주 할 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같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보였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전공하고 졸업하지만, 업으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 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말이 더 가까울까. 나도 영상을 전공했고 그 일을 진심으로 하고 싶지만 다른 분야에 있다. 내 분야에서 영상을 하고 싶지만, 말 그대로 쉽지 않다. 어렵다. 날고 긴다는 사람들, 음악을 업으로 삼을 실력자들이 악단에 선발되어 그 자리에 앉아있다. 그들이 김수연 뒷모습을 보며 앉아있다. 무슨 생각이 들까. 판단할 수 없다. 누구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없다. 그저 궁금했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빛만 보였다.


무대가 끝난 뒤 사진이다. 직원분이 공연이 끝난 뒤에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했다. 혹시나 찍어도 안되는 사진이라면 꼭 댓글이든 어떤 형태로도 알려주면 반드시 꼭 지우겠다. 가운데 보라색 드레스가 김수연이다.



무대가 끝나고

나는 매너있는 관객일까. 확답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부분에서는 매너를 지키려 노력한다. 공연 중에 기침은 할 수 있다. 생리현상인 것을 어쩌겠나. 계속할 수도 있다. 전화벨이 한번 울리는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을 한번 찍어, 찰칵 소리가 나는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이해하려 노력한다. '한번'에 한해서이다. 연속된 벨소리와 찰칵 소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소리는 났지만 쳐다도 안봤다. 그만큼 공연이 좋았다.

우스갯소리지만, 내게 몇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공연 시작 전에 EMP탄을 공연장에 터뜨려 모든 전자기기를 마비시키면 좋겠다. 물론, 공연에 필요한 장치들은 사전 보호 조치가 된다는 가정 하에. 둘째, 공연장 의자를 '스마트 의자'로 바꿨으면 좋겠다. 앉기만 하면 스마트폰이 종료되어 켤 수 없는 놀라운 기능을 가진 의자로.


그래도, 공연은 즐거웠다. 동그래지는 얼굴은 즐거울 순 없지만!






공연이름

화음 ; 젊은 예인들의 어울림 소리, 자연의 소리와 전통가락의 자유로운 조화


공연시간

2017.08.31~2017.09.28 매주 목요일 17:30


공연장소

민속극장 풍류




우리 처제는 가야금을 전공했다. 지금은 전공을 다른 의미로 살려 연주자 보다는 공연기획자로 커리어를 쌓고 있다.

이런 처제가 오랜만에 무대에 서게 되어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바로 '화음'이라는 시리즈 국악 공연이다.

약 한달간 1차례의 등용, 3차례의 지음, 1차례의 득음으로 총 5회 진행된다.

'등용'은 대학입학 전의 연주자들(프로필을 보니 다 고3이다.)

'지음'은 미래가 촉망받는 젊은 예인들

'득음'은 이미 자신의 소리를 찾은 명인 연주자들이 무대를 꾸민다.

브로슈어에는 없으나 공연 사회자의 설명과 내 이해를 더해 썼다.

참 좋은 취지의 공연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취지를 더 밝히어 적었으면 더 좋았겠다.

*자세한 것은 아래 링크 참조!

https://www.chf.or.kr/c1/sub9.jsp?brdType=R&bbIdx=104935


모든 연주는 '산조'로 진행을 했다.

산조란 기악독주의 민속음악 형식이다. 산조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만큼 어려운 질문같다ㅋ 산조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나중에 살며 듣는 것이 있을 듯 싶다.

브로셔에 연주자의 이름보다 크게 보이는 것이 ㅇㅇㅇ류 ㅇㅇ산조이다.

어느 류를 따르냐가 중요해 보였다.

거문고를 연주한 이선화 씨와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이다. 그저 참고자료로 올렸다.


내가 관람한 공연은 9/7에 있었던 첫번째 '지음'이다.

KBS에서 국악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 사회자면서 국악 평론가이신 분이 사회로 무대를 여셨다.(프로그램 명도 성함도 기억 안난다.. 민머리셨고 빨간 스웨터를 입고 계셨다.)

사회자의 간략한 소개가 끝나고, 연주자의 프로필을 담은 간단한 영상과 배경영상(들, 호수, 바다 등등)이 띄워진 상태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난 국악의 문외한이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 전문가는 아니다.
공연의 어떠한 평을 남길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느낀점을 적는다.

성과가 세가지 있었다.
1. 좋은 기획으로 국악공연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국악하면 뭔가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화음이라는 시리즈로 전 세대의 예인을 만남으로(물론, 나는 하나의 공연만 봤지만 앞뒤를 예상할 수 있었다.) 현재진행형 국악을 만난 느낌이었다. 내 전문영역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좋은 연주를 넘어 의미가 담긴 공연기획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뛰어난 음악 감상만을 목적으로 한 공연도 당연히 좋다.

2. 가야금, 아쟁, 거문고의 차이를 알았다.
혹시나 학교에서 배웠을까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는 없다. 가야금, 아쟁, 거문고는 겉보기에는 사실 비슷하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와 베이스 정도의 차이일까? 정확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비유일 것 같다. 세 악기가 가지는 차이는 겉모양 보다는 연주방식에 있었다.

가야금은 손으로 뜯고, 아쟁은 활로 켜고, 거문고는 막대기로 튕기거나 긁는다.
이에 따라 소리, 연주기법, 분위기가 다 달랐다.
세 악기의 이름은 알고있었지만, 구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악에 무지한 나로서는 참 기뻤다.

3. 거문고의 매력을 느꼈다.
위에 이선화 씨의 브로셔 내용을 예로 쓴 이유는... 듣기에 제일 좋은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거문고를 막대기로 튕기거나 긁는데, 그 주법이 보기에도 듣기에도 다양했다.
그런 것을 처음 보아서 신기했던 탓도 있다. 인상이 깊은 장면은 참 힘있게 튕기고 긁는데, 여러 동작에서 막대기와 거문고 몸통이 부딫히는 것에 있었다. 옆에서 고수가 장단을 맞춰 주는데, 막대기가 거문고 몸통을 울리며 줄을 동시에 튕기는데 그 장단이 맞아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흡사 기타로 리듬을 잡는 듯이 연주가 되었다.
이름만 알았었지, 그 존재를 새로 알게된 악기에 전혀 처음보는 주법(그 주법이 일반적 주법인데 내가 몰랐다 할지라도)이 만족감을 더했다.

'연주자'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한 계기도 되었다. 정해진 박자에 맞춰 어떠한 음을 정해진 세기로 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연주한다는 그 상투적인 말뜻을 이제야 조금 본 것 같다.



젊은, 그리고 선배 예인들이 객석을 많이 채웠다. 
그들은 아마 서로 아는 사이겠지. 몰라도 같은 세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동지감이 생길 것 같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사회라고 해도 좋다.
악기라는 무기를 평생을 갈고 닦아갈, 닦고 있는, 닦은 혹은 이 세 가지가 이미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내 칼은 무엇일까, 내 세상은 어디일까 생각한다.
글이라는 칼을 좋아한다. 카메라도 좋다. 수단이 아닌 내 삶 자체일 수도 있겠지.
내 주무기는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원형은 글이지 싶다.

공연을 알게 해주고, 보게 해준 처제가 참 고맙다.
남은 공연을 전부 보지는 못하겠지만, 마지막 득음 공연은 가능하다면 챙겨보고 싶은 마음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21898942


2017년 9월 2일 토요일 중앙일보 신문 15면에 청와대 밥상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대통령 별로, 자리가 갖는 의미 별로 청와대 밥상에 대해 다뤘다.


그런데 맨 아래에 이번 청와대 밥상을 책임진 임지호 셰프의 간단한 Q&A가 내 마음에 왔다.



Q. 제일 자신 있는 요리는?


A. "그런 건 없다. 음식은 계속 변해 간다."



이 Q&A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것을 할 수 있니?라는 질문을 누군가 하면.. 나는 보통 '할 수 있어. 혹은, 이것은 할 수 없어. 왜냐하면 ㅇㅇ때문이야'라고 한다.

그런데, 질문을 한 사람은 위와 같은 답을 원하지 않는다. 사실 답이 아니기도 하다.

'현 상태에서는 정확히 니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어. 하지만, A와 B를 준비해 준다면 언제까지 요정도는 완성시킬 수 있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마도 질문자가 원하는 답일 것이다.

내가 하는 대답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할수밖에 없는 말이다. 예측하고 실행해낼 능력이 사실 없어서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시간이 지나면 노하우가 쌓이고 전문가가 된다. 되기 싫어도 한 분야에 있으면 그렇게 되는것 같다. 유명세와는 별개로 말이다.

위 질문에서는 제일 자신 있는 요리를 물었다. 질문은 말 그대로이다.

답은 '제일 자신 있는 요리같은 것은 없다.' 라고 말한다. 그 이유로는 음식이 계속 변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맛있는 음식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때에 따라 다른 맛을 말한다.

결국, 때와 상황과 사람을 다 고려하여 음식을 만들어 냈을 때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의 맛이 된다.

음식은 계속 변해간다 라는 말은 요리사가 고려하고 배려해야 할 조건도 변한다는 말이다.

임지호 셰프의 답은,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라는 매우 겸손한 답변으로 다가왔다.


음식뿐이 아니다. 삶에서의 전문영역도 계속 변해간다.

언젠가 나도 위와 같은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당당하게, 하지만 겸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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