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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카페에 온다.
유명한 브랜드 커피점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개인브랜드 커피(?)점에 가려 하지만, 이 곳에 오는 이유는 아침에 문을 여는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슬픈 이유를 하나 더 대자면, 의무와 사명감으로 방문하던 개인브랜드 카페가 영업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다는 것을 더할수 있겠다. 그곳에는 지금 같은 사장님이 커피 대신 골뱅이를 팔고 계신다.
그 이후로, 이곳에 방문한다. 이름을 숨겨 무엇하리, 이디야에 온다. 반년 넘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변함없는 멘트로 맞아주시는 아르바이트 직원분이 계시다. 어렴풋이 따져도 반년이 넘는 기간동안 얼굴을 보았다. ‘안지 반년이 넘었다.’라는 사실에 비해 주문을 주고 또 받는 순전히 양방아닌 일방적인 사이이다. 앉는 자리와 카운터는 멀리 떨어져 있고, 음악은 크다. 궂이 말을 걸 이유도, 일므을 알 필요도 없다. 나는 문이 열려있으면 그만이고, 앉을 자리가 있다면 다행이다.

에스프레소와 얼음잔
시키는 메뉴는 둘중 하나이다. 에스프레소 혹은 따뜻한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분위기니 뭐니 하는 문제를 떠나, 내게는 가격대비 가장 합리적인 메뉴이다.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게 단 것은 좋지만, 시럽이 들어간 단맛은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맛이 아닌데 궂이 돈을 더 주고 사먹을 이유가 없다.
자리에 앉음면, 쌉쌀하고 고소한 에스프레소를 한입 혹은 욕심내어 두입을 대고는 얼음잔에 부어 차갑게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나름의 의식과 과정이랄까.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먹고싶은 것이 아니다. 그냥, 에스프레소를 얼음잔에 부어먹는 것이 좋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 까페를 가든 에스프레소를 시키면 얼음잔을 같이 부탁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카페의 수준(?)이 슬며시 드러난다. 아무런 의심과 생각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얼음잔을 주는 곳이 많다. 감사하다. 이 말은, 기껍지 않은 곳도 있다는 말이다.

어느 곳의 이야기를 해볼까. 할xx커피라는 곳이었던 것 같다. 얼음잔을 달라고 하니 표정이 굳어진다. 나를 잠시 쳐다보고는 물은 같이 못준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얼음잔을 푸줏간 고기주듯 턱 하고 내려놓았다. 얼굴이 화끈했다. 이사람이 지금, 나를 돈 아끼려는 사람으로 보는구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고작해야 에스프레소에 얼음에 차가운물 섞어 휘휘 저은 액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는구나. 내가 제도의 틈을 이용해서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공짜인 얼음을 받고 물도 그냥 달라고 해서 겉으로 보이는 품격은 지키면서 자기 소중한 돈 오백원 정도는 아껴보려는 그런 사람으로 보는 것이구나.
물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두 가지의 할말이 있었다. 얼음값을 지불해야한다면, 지불하겠다고. 원래 에스프레소는 물 한잔과 같이 줘야 맞는 것이라고 말이다. 설탕과 스푼은 당연하고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어디를 가든 얼음잔을 잘 달라고 하지 않는다. 스타xx같은 유명브랜드에서는 물론 기꺼이 얼음컵을 준다. 직원이 어떤 마음으로 얼음컵을 건네든, 일단 겉으로는 웃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

자족함과 굶주림
어떤일이 있었든, 나는 지금 이디야에 앉아있다. 에스프레소를 시켰지만 얼음컵은 부탁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시원한 곳, 활기찬 음악, 편한 의자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 이 단어를 조합하면 꽤 만족스러운 분위기가 상상된다. 대부분의 시도가 만족스럽다. 문제는 저 반대편에 있는데, 대부분이 아닌 때에는 문득 아쉬워진다. 더 맛있는 커피가 먹고싶다는 생각이다.
좋아하는 커피점이 나도 있다. 맛있는 원두를 볶아 판다. 방문한지는 오래되었다. 그 곳에 가서 원두를 무엇이든 사고 싶다. 목요일 정도에 방문하여 갓볶은 원두를 사고, 여유있는 토요일 아침 10시정도 그 원두로 커피를 내려마시고 싶다. 그 맛이 그립다. 만난지가 참 오래여서 더 그립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누군가가 말하는 원칙이 있다면, 그것이 여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더 맛있는 것을 먹고싶고, 더 아름다운 것을 보고싶은 것이 그렇다면 욕심일까. 그냥,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나에게 허락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인정하고 수긍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 나도 모르게 만족하지 못하는 나는 그렇다면 너무 욕심쟁이인 것일까. 나와 내 삶과 환경에 대고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하는 중인 것일까.
커피가 아니더라도, 빵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 허락된 여러 요소에서도 문득 느낀다. 내가 자족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죽도록 싫고 힘든 부분이 있다. 개선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상황에 마주하였을 때에, 나는 자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의 욕심을 인정하고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여기에서 나의 본심을 이야기하면, 나는 맛있는 커피를 택하고 싶다. 당연하다. 더 시간이 들더라도, 더 노력이 들더라도, 이런 좋은 환경에도 만족하지 못하냐는 비난을 듣더라도 말이다. 음악이 없어도, 편한 의자가 없어도, 나는 조금 더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 ‘난 만족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자족함보다는 굶주림을 택하고 싶다. 자족은 거짓만족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굶주림은 노력으로 그 노력은 만족함으로 이어질테니 말이다. 물론, 노력의 다음 순서가 절망인 경우도 있다. 없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있다.

카페에 앉아 잔을 이미 비웠다. 부어진 커피는 어디로 흡수되었는지, 내 마음은 아직 허하다. 생각나는 것은 더 맛있는 커피 한잔이다.

역사란 무엇일까. 역사란 대체 무엇인가. 사학을 전공했지만, 그와는 전혀 무관하게도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하면 정해진 답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는 질문할 수 있겠다. 나는 역사를 무엇이라 생각할까? 아니, 인식할까?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넓어지는 것인가. 사람, 대상, 혹은 단체는 발전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인 것인가?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읽고 있다.

박웅현씨의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고서 손에 잡은 책이다.

'다시, 책은 도끼다.' 리뷰 링크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대출기한을 연장했다. 천천히 읽고, 또 읽고싶어지는 책이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사게될 것 같다. 곁에 두고 계속 꺼내보고 싶은 책이 이미 되었으니 말이다.

책 전체에 대한 리뷰는 아직 멀었지만, 그중 기억해놓고 싶은 부분이 있어 적고 생각을 남기려 한다.


'1부 연속성의 의식 중, ['역사'라는 단어의 다양한 의미들]

"위대한 의사 A는 어떤 병을 고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잇는 치료법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십 년 후 의사 B가 더 효과적인 치료법을 만들어 내고, 그리하여 이전(그러나 천재적인) 치료법은 폐기되고 망각된다. 과학의 역사는 진보의 특성을 지닌다.

 역사의 개념이 예술에 적용되면 진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완성, 개선, 향상을 함축하지 않으며, 미지의 땅을 탐험하고 그것을 지도에 글여 넣으려고 시도하는 어떤 여행에 가깝다."


우리는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낼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한 단체가 지나온 길을 설명할 때가 그 때이다. 지금의 '나', 현 상태의 '나'가 있다. 나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것도 있지만, 선택이 아닌 어떠한 환경들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나는 '진보'하였는가? 실제로 그리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하다고 믿고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실제에 조금은 더 근접한 말일까.

자기소개서 쓰기가 왜 어려울까. 대상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이 왜 어려울까. 밀란 쿤데라의 단어를 빌리면 '커튼'을 잔뜩 쳐놓아서이다. 지금의 나는, 도덕적으로 훌륭할까. 낭비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정말 떳떳한 삶을 살고 있을까. 문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다'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모순에 있다. 내가 인생을 똑바로 살아왔다면 나는 발전하고 진보했어야 맞는 말이니까. 그래야 남이 좋아하고, 그것이 '정상'이니까. 하나를 숨기면, 다른 하나를 다시 숨겨야 한다. 숨긴다 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지금의 나로부터 시작해 과거를 더듬으며 사실아닌 과정을 적어내려갈 때에 완성된 것은 역사일지 소설일지 알기 어렵다.


돈키호테가 왜 그리 유명한 소설일까. 현실에 맞서 꿈을 좇은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여서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은 줄 알았다. '라만차의 돈키호테' 그 이름도 멋지다. 돈키호테는 괴물과 맞서 싸웠다. 충성스러운 하인인 산초가 있다. 사랑하는 공주님을 위해 순정을 바칠 줄도 아는 남자이고, 자신의 신념을 지킬 줄 아는 멋진 사나이로 여행중이다. 똑같은 말이지만 다시 이야기해볼까. 알폰소 키하다라는 정신병자가 소설을 하도 많이 읽어서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짓고, 조금 더 정신병자같은 바보인 산초라는 사람을 데리고 다닌다. 풍차를 괴물이라 부르며 달려든다. 옆동네 이쁘지도 않은 한 여인을 공주라고 부르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번도 본 적도 없고 실재하지도 않는 이를 '사랑'한다라고 한다면 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 착한 사람들을 악당이라고 외치며 공격하고, 무전취식하고 때로는 돈도 뜯기며 지금도 계속 돌아다니는 중이다.

돈키호테의 주인공은 하나이지만, 이야기는 두개이다. 우리는 이 두개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읽을수 밖에 없다. 커튼, 역사, 돈키호테까지 왔다. 지금의 나는 알폰소 키하다이지만, 돈키호테로 남들에게는 소개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렇게 강렬히 믿는다는 것이다. 상황은 꼬이고 악화된다. 내가 아닌 나를 '자신'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사실 아닌 역사를 나도 모르게 만들어놓고, 마치 나는 진보해야 하는 것처럼 만들어진 나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존재대로 살아라. 자신을 사랑해라. 현재가 너에게 가장 큰 선물(PRESENT)이라는 등의 우리를 위로하는 말들이 있다. 이 말들이 정말 전하고픈 메시지는 커튼을 걷으라는 소리 아닐까. 진보하고 싶다면, 나아지고 싶다면, 조금 더 넓어지고 싶다면, 당신 자신을 똑바로 봐라. 돈키호테로 포장된 누군가가 아니라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을 먼저 바라보고 직면해라. 그래야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첫 단추를 끼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첫 단추를 끼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한 다음에야 우리는 스스로에게 맞는 옷을 고를 자격이 주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활발히는 아니지만, 간간하게 블로그를 유지하는 나에게도 한달에 약 10장 정도의 초대장이 발송된다.

초대장을 10명에게 나눌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 꼴로, 초대장을 나눈다는 글을 남긴다.

초대장 나눔에는 많지는 않아도 몇가지 조건을 단다.

내 포스팅 중 하나에 공감과 댓글을 달아달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만들 블로그에 대해 간단히 남겨달라는 것이다.

조회수를 늘린다거나 뭐 그런 목적은 아니다. 많지 않은 포스팅을 남기고, 글을 조금씩 쓰지만 어떻게 읽히는지 궁금해서이다. 억지로나마 평가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이 택한 것들과 그에 대한 조언(?)을 보면 재미도 있고 유익도 하다. 물론 나에게 말이다. 

자신이 만들 블로그에 대해 남기는 것도, 조금 고민해보라는 의미이지 고생시킬 의도는 없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 사람이 똑같은 글을 여러 블로그에 복사 붙여넣기 해서 초대장을 요청한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달라는 초대장을 달라는 글을 심심찮게 보는 것으로 알 수 있고, 그럴 목적으로 쓴 글은 대략 보면 알 수 있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초대장을 못받을 경우를 대비해야 하니 말이다. 한 블로그에만 부탁하라는 법도 없고 말이다.

이리 보면, 경쟁이 치열해 보인다. 그런데, 막상 초대장을 나눠주려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초대장 10장을 다 못쓴다.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 내가 초대장을 주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초대장을 받은 상태이기에 내가 초대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 인사담당자의 말이 생각난다. 저 친구는 꼭 우리회사에 데려오고 싶어서 최고점을 주면, 그 친구는 더 좋은 회사에 가더라는 것이다. 사람 마음은 요 부분에서만큼은 같은듯 하다.

두번째는... 조건을 안지킨다...ㅋ 댓글과 공감을 남기지 않고, 그냥 초대장 달라는 말만 써 놓는다. 아마 초대장 달라는 댓글을 여기 저기에 달고 있는 사람들일 것 같다. 내가 써 놓은 조건들은 아마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99%확신한다.


매달 지켜보는데 이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 통해서 조금씩 알게되는 관찰사실(?)이 있다.

열심히 조건을 이수(?)해서 남긴 사람들은 초대 수락을 바로 하며, 비교적 블로그를 성실하게 한다. 반면에, 초대조건도 안읽고 그냥 초대해달라는 댓글만 단 사람은(이 사람들에게도 그냥 초대장을 발송하기도 한다.) 초대장 수락이 상당히 늦고, 비어있는 블로그를 만들어놓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한달에 한번씩 겪으며,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는 확신이다. 이번달도 어김없다.


가을이 왔다.
배수관 옆, 올 것 같지 않은 곳에서도 불쑥.
어느새 와 있었다.

어찌보면 저곳이, 내 마음보다 낫구나.



초대장 나눔합니다~

10장을 나눔합니다.


초대장 나눔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에 동의하시지 않으시는 분은 댓글을 남기지 말아주세요.

조건을 거는 이유는 낭비되는 초대장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더 필요한 분에게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정보를 빼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시작 전 생각해보면 좋을만한 것들을 적어보는 시간은 언젠가는 가져야 하기에

그 시간을 미리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조건을 겁니다.


나눔 조건은...

제 블로그 글 중, 하나 이상에 공감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그리고, 이 글에

1. 성함(필명도 좋습니다:) )
2. 블로그를 하고 싶은 이유
3. 본인이 블로그를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4. 초대받으실 이메일 주소

를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2018년 9월 9일(일)까지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에서 10분께 초대장을 보내 드릴게요:)


초대장을 받으신 분들은, 

9/12(수)까지는 꼭 초대수락을 해 주세요!

초대장 방치는 원치 않아서, 수욜이 지나기까지 수락 안되어있으면 철회하겠습니다ㅠㅠ!

수락하신지 일주일 안에 꼭 첫 글을 써주세요~

일주일안에 시작 못하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쓰기 힘드니까요~


감사합니다:)

제목 : 테레즈 라캥


동기

에밀 졸라의 소설, 동명의 영화작품을 기억한다. '테레즈 라캥' 프랑스에 대해 묘한 호감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저게 무슨 뜻일까... 궁금하기도 했다.(사람 이름이었다.) 결국, 고전이어서 선택했다.



내용

18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야기이다. 어린시절 아버지에 의해 고모에게 맞겨진 테레즈, 테레즈의 사촌이자 그녀와 결혼하게 되는 병약한 카미유, 결혼 후 만나게 되는 새로운 남자 로랑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숨은 주인공을 한명 더 이야기하자면 카미유의 엄마인 라캥 부인이다.

사랑에 빠진 테레즈와 로랑은 계획을 꾸며 카미유를 죽인다. 그리고는 죄책감이 불러운 카미유의 유령에 괴로워하다 종국에는 함께 자살을 택한다.


테레즈의 변화

테레즈는 바라는 것도 없는, 무엇을 바라야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여자였다. 모든 일에 수동적으로, 심지어는 결혼조차도 의지없이, 사랑하지도 않는 사촌과 하게 된다. 그런 테레즈가 로랑을 만나 변화를 보인다.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의지를 내비치고, 욕망을 보였다.


숨은 주인공 라캥 부인

마지막에, 라캥 부인은 중풍(?)에 걸린다. 말도, 표현도 못하고 눈뜨고 볼수밖에 없는 몸 상태이다. 그 상태에서 함께 살고 있던 테레즈가 자신의 아들인 카미유를 죽이고, 함께 가담한 로랑과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찌나 충격이었을까. 그 사실을 알리려 모든 노력을 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결국, 그 테레즈와 로랑의 파국을 보는 것이 삶의 유일한 소망이 되어 결국, 그 소망에 다다른다.

마지막 한 페이지

책의 마지막 한 페이지에서 그 둘은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한다. 그리고 라캥 부인은 그것을 보고 있다. 원래는 서로를 죽이려 했다. 한명은 칼을, 한명은 독약으로 말이다. 그런데, 서로의 무기를 확인한 순간 그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독약을 나눠마셔 함께 죽는다.

아이러니하다. 이 둘은 사랑했다. 첫눈에 반했고, 뜨거웠다. 결혼 후에는 죄책감에 서로를 미워하고 괴롭힌다. 살인을 통해서 이뤄진, 비극을 배태한 결혼이었다. 결국, 그 둘은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지체없이 실행한다.



결론

각자의 욕망만을 보고 나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라캥 부인은 자신의 아들만을 위해서 테레즈를 희생시켰다.

카미유는 그런 부인 아래에서 그저 당연히 받으며 자랐고, 그렇게 살고자 했다.

테레즈는 나중에서야 찾은 성적 욕망을 따랐다.

로랑은, 친구의 여자 그리고 재산을 탐했다.

다들, 가엾다. 조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봤으면 어땠을까. 나의 결정과 선택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영향을 받을지 조금만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허나, 이런 생각은 싸구려 감상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가정은 힘이 없다. 이런 세상이다. 이를 인정한 상황에서 나아갈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각자의 저지른 상황을 인정한 다음 걸음은 무엇이었을까. 어디서부터 풀어나갈 수 있었을까. 알 수는 없다.

제목 :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이시하라 가즈코

다시 써본 부제 :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인정하라!

동기

책은 제목으로만 골랐다. 요즘 유행하는 퇴사 시리즈라든가, 괜찮아 시리즈들이 있다. 광고나 기타 매체에서 이 책은 몇번 스쳐가듯 본적이 있다. 작가도 후기도 읽지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한번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절망이야 다 끝이야 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인지하는 단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잡게 되었다. 그럴 떄 읽는 책이라고 제목에 써있으니 말이다.

마포중앙도서관에는 누가 대출해갔길래, 상호대차라는 놀라운 시스템을 이용해 책을 빌려보았다.

내용

내용을 한줄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라' 라고 쓰고 싶다.

보통의 우리는 타인중심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눈치를 보고, 나의 감정보다는 남의 의견을 더 우위에 두었다. 물론, 머리로는 내 감정을 소중히 해야함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자존심도 있고, 두려움도 있어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거나 상담 비스무리한것을 하면(내 주제에),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로 뱅뱅 도는 경우가 많다.

당장 생각나는 예는 연애문제이다. 우리 집 상황이 안좋다. 상대방 집 상황도 안좋다. 그런데 내 상황은 이렇고, 상대방은 이런거 같다. 상대방의 말을 논리적으로 끼워맞추어 결론을 도출해 보면 결국 가장 합리적인 답은 이별이라는 답에 도달한다. 그런데, 헤어지고 싶냐라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란다. 계속 또 상황과 주변머리만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한 경우는 아니겠지만,

"'헤어지고 싶어'가 솔직한 내 마음이야.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진 않아. 왜냐면, 주변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그리고 난 그렇게 나쁜놈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도망치고 싶다.' 이 마음은 결론이면서 시작이다. '도망치고 싶어'라고 솔직히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이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소수일까. 많은 이들이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품지만,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이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계속해서 풀리지 않고 쌓이고 꼬여갈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실패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그 마음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그런 상태가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ok다. 허나, 혹시나 그렇다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외면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음을 인지하고 내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인 것이다. 그 해결법은 꼭 도망이나 포기가 아닐 수 있다.

결론

내 경우에는 책을 잡기 전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을 사실 인지하고 인정했다. 어느 순간 알게되었다. 아닐거라고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맞았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것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조금의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집었다. 책을 빌릴 때, 이런 제목의 책을 빌려줄 때 사서가 나를 보며 한심한 듯 생각을 하진 않을까 조금 염려한 것은 안 비밀이다.

책에서는 여러 기술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거절하는 법이라든가, 이런 기분이 들 때 어쩌해야한다든가 말이다. 여러 말을 하지만 핵심은 '인정하라, 그러면 시작될 것이다.'이다.

책은 술술 읽힌다. 심지어 종이도 두꺼워서 두께도 금방 줄어든다.

엄청난 교훈이나 처세술이 담겨있지는 않다. 우리가 기대하며 펴든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러하듯 말이다. 혹시나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듦을 스스로가 인정했다면,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다. ''당신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이 책을 손에 잡은 당신은 제법 용기가 있는 사람이에요." 라고 책의 저자가 말을 건넬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책을 잡는다.

사람과 마주할 때는 두 경우가 있다. 답답하거나 시원하거나. 나를 읽고 명확한 답을 하거나, 자신도 무슨 소리를 하지 모른 채로 말을 끼워맞출 때이다.

책은 한 가지이다. 생각. 내 생각에 맞든 틀리든 생각하게 한다. 주장이 있고 근거가 있으면, 자신의 것을 이야기할 뿐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나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맞겠지만, 가끔은 책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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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한 산에 오르니 트랙터가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하는 질문이 나오려다 들어갔다.

내가 올라온 길로 먼저 올라왔겠지, 너라고 특별하겠니, 나라고 특별한 길을 걸었겠니.


지금은 고요한 가운데에 있어도, 일할 때는 검은 매연을 품으며 탈탈탈탈 굉음을 내겠지.

결국 너는 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밀어버리고 없애버리겠지. 그것이 네 일이고, 존재겠지.


알고있다. 너에게는 의지라는 것이 없어서, 이렇게 말을 거는 듯한 생각조차 참 우스운 것이라는 것을.


단지, 참 예뻐보이더라. 산 자락에 구름이 깔리고, 초록과 하늘과 흰색 그리고 흙색 그 위에 다홍색의 네가 서있는 모습이 묘하게 어울리더라. 그냥, 그렇더라.


초대장 나눔합니다~

10장을 나눔합니다.


초대 조건은...

제 블로그 글 중, 하나 이상에 공감과 댓글을 부탁드려요~

그리고, 이 글에

1. 성함
2. 블로그를 하고 싶은 이유
3. 본인이 블로그를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4. 초대받으실 이메일 주소

를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그냥 블로그를 개설하기보다는, 누군가에게 글로 자신이 할 것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시간을 잠시만이라도 가지면 도움이 될거라는 마음에 조건을 겁니다:))

2018년 8월 12일(일)까지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에서 10분께 초대장을 보내 드릴게요:)


초대장을 받으신 분들은, 

8/15(수)까지는 꼭 초대수락을 해 주세요!

초대장 방치는 원치 않아서, 수욜이 지나기까지 수락 안되어있으면 철회하겠습니다ㅠㅠ!

수락하신지 일주일 안에 꼭 첫 글을 써주세요~

일주일안에 시작 못하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쓰기 힘드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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