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본 부제

"책은 거들뿐 : 내 생각을 깨는 커스텀 도끼 제작 경험담"




독서편력

읽고싶은 책은 항상 있다. 허나, 읽고싶은 책이라고 해서 항상 술술 읽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읽는 두 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 고전이거나, 유명인이 쓴 책이거나.



제목 및 저자

이번에 읽은 책은 박웅현씨가 쓴, '다시, 책은 도끼다'이다.

'책은 도끼다'에 이은 후속작이다. 전작은 사실 읽어보지 않았다.

먼저 읽어도 좋겠지만, 시간순으로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최근에 나온 이 책을 먼저 잡았다.


읽은 동기

TBWA라든지, 박웅현씨라든지, 혹은 그가 만든 여러 카피들은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익히 들은바 있었다.

어떤 책을 읽는 사람일까 궁금했다. 그 책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궁금했다.


내용소개

책과 강독법을 소개하는 여덟번의 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철학, 문학, 예술 등 한 주제 안에 몇가지 책을 선정한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는 텍스트(저자가 밑줄 친)들을 소개하고 그를 중심으로 책과 자신의 생각을 적어(말해)나간다.
즉, 나는 이런저런 책을 읽었고 이 부분이 좋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나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설명해 나간다.

다시, 즉! 자신의 독법을 소개한다.


느낀점

나만의 것, 독특한 것, 개성 등등. 세상에 유일하고, 나에게만 허락되며,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것들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이 소비자의 욕구 아닐까 싶다. 동시에, 안정되고 손해보지 않는 길을 걷고싶은 마음도 있지 않을까. 박웅현씨의 책을 읽는 사람들의 심정은 그와 같지 않을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이 읽은 책을 읽으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으면서 그의 독특한 시선을 공유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 말이다.

글을 쓰며 조금 더 명확히 알았지만, 나도 사실 그런 기대로 책을 집은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지 마!'라고 한다.

"빨리 많이 읽는다고 좋은거 아니야, 천천히 하나를 제대로 읽어. 나도 자랑하고 싶어 책을 읽기도 해. 그런데,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결국 깨달음이 오더라. 이건 그냥 내가 그랬다는 거고 너까지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여러 책들을 소개하고 자신의 독특한 시선을 말하는 강연을 기대하고 책을 집었건만, 저자는 '야, 그거 아니야:)' 이런다.


다시, 부제 : "책은 거들뿐 : 내 생각을 깨는 커스텀 도끼 제작 경험담"

예쁜 신발, 좋은 옷 등등. 아무리 좋은 기성품이 있어도, 나에게 맞지 않고 어울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의 삶과 생각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과거로 인해 지금의 나가 결정되었다. 내가 선택한 부분도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가진 생각이 다르고, 지켜야 할 것과 파괴해야 할 것들이 다르다.

도끼를 생각해 보자. 검색도 하지 않고 내 맘대로 막 지어보면... 대인용 도끼, 벌목용 도끼, 조각용 도끼 등 도끼만 해도 그 종류가 수가지일 듯 하다. 같은 벌목용 도끼라 하더라도 사람의 체형과 체구, 손 모양에 따라 디자인과 무게 등의 구성요소가 달라야 할 것이다.

세상은 '좋은 기성품을 사면 되' 라고 말한다. 흐름에 휩쓸려 너도 나도 기성품을 사지만 그 행동에 허무함이 깃드는 이유는 그것이 과연 '나에게 맞는 것'이냐의 문제이다.

독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는 나를 아는 것이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생각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에서 시작하여 줄기와 잎사귀를 자라게 하는 양분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를 깨는 것이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껍데기를 까부숴야 하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말이다.

작가는 여러 책을 통해, 자신의 도끼를 보인다. 그러면서, '이 도끼랑 똑같은 것을 만드세요. 이것만이 가치있어요.' 라고 하지 않는다. 단지, 도끼를 만든 경험담을 너무나도 즐겁게 이야기할 뿐이다.


기본적인 이야기. 기본중 가장 기본. 허나, 성급하게도 잘 지키지 못하는 기본을 작가는 결국 이야기한다.

흙의 세례 - 이익상 저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 그중 '흙의 세례'를 들었다.

이 소설은 엄효섭 배우님이 읽으셨다. 사실, 이름만 들어서는 누군지 알기가 힘들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얼굴을 보니, 드라마에 자주 나오시는 분이었다. 얼굴을 보니, 이 분과 마주앉아 읽어주는 느낌이 든다.

1925년 문예지 개벽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며, 낙향한 지식인 부부의 이야기이다. 지식인의 자기모순과 한계를 나타냈고, 귀농후 아무일도 하지 않는 남편 명호와 열심히 해보려는 아내 혜정의 작은 갈등 이야기를 그린다.

위 간단한 설명은 오디오북에서 엄효섭 배우님이 읽어주신 것을 참고했다.

듣던중 집중하게 되는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주로 남편 명호의 생각을 독백처럼 읽어주는 부분이었다.

1

명호는 항상 자기가 자신의 행동을 조종할 만한 의지의 힘이 박약하여 필경은 아무 긴장한 맛이 없는 생활조차 마음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의지가 박약한 것만이 원인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일과 또는 귀와 눈에 활동이 있는 이상에는 반드시 아니 보이고, 아니 들리면 아니 될 여러 가지 사상이 도리어 자기라는 육(肉)과 영(靈)의 화합이 아니오, 혼합인 덩어리를 절망의 구렁으로 떠미는 것이 생에 대한 권태를 일으키고, 이 권태가 다시 얼마 남아있지 못한 기력을 소모함인 것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다른 소위 승리자와 같이 무엇이든지 이기고 나아가지 못하는 이 섬약한 의욕에는 증오를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한 증오를 느끼게 됨도 그가 어떠한 동기로든지 무슨 충동을 받을 때의 일이오, 평상시에는 염두에 올리지도 않은 것처럼 태연해 보였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흐리멍덩한 것은 결코 그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때에 냉정히 자신을 비판할 때에는 자신에 반드시 두 가지의 다른 형식으로 표현된 이중성격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의 불순을 느끼는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이 불순하여 보였다.

따라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처지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그에게는 제왕도 없었다. 모든 권력도 없었다. 이상도 없었다. 있다 하면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생활의 힘이었다. 날카로운 비수를 가슴에 댄다 하여도 그의 전 인격이 그것을 두려워함이 아니요, 다만 생활하겠다는 본능이 그것의 위혁(威嚇)에 전율할 뿐이었다. 이렇게 대담하면서도 어떠한 때에 곁에서 보는 사람이 웃을 만큼 쉽게 그는 희로의 감정을 나타내었다. 또는 자기와 친한 친구나 친척이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 오히려 눈썹 하나를 까딱하지 않고 “사람이란 죽는 것이니 할 수 없지. 언제든지 반드시 죽을 터이니까…… 그가 사람인 이상에는…….”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에게는 뜨거운 피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의심할 만큼 냉혹해 보였다. 그러한 대신에 어떠한 때이면, 소설 같은 것을 보다가도 눈물을 흘리게 되어 보드라운 감정을 가진 것도 보였다.


나는 무엇일까? 지금, 이순간까지 나를 형성해오고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철학이, 누군가는 종교가, 누군가는 함께한 사람에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았다.
그런 앎과 깨달음이 지금 내 삶의 모습과 나아가는 방향에 일치된다면 어찌나 좋을까. 명호는 지금 그게 안되나보다. 

"여러 가지 사상이 도리어 자기라는 육(肉)과 영(靈)의 화합이 아니오, 혼합인 덩어리를 절망의 구렁으로 떠미는 것이 생에 대한 권태를 일으키고, 이 권태가 다시 얼마 남아있지 못한 기력을 소모함인 것"

하..! 하고 감탄한 부분은 '화합이 아니오, 혼합인 덩어리'라는 것이다. 부품들의 합과 완성품은 다르다.
모인 부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완성품이 될지 알기 어렵다. 복잡한 물건일수록 그러한데,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어떠할까.
화합되지 않은 사상들은, 기대와는 달리 그저 혼합된 덩어리와 같다.
자동으로 어떠한 형체를 갖춰주면 좋으련만, 덩어리에 불과하다. 노력이 부족한 탓일까.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을 보니 그러한 것이다. 현실은 이상에서 참 멀다.


2

그러면요 "지금 하는 일은 장래에 생활을 얻으려고 미리부터 준비하여 두는 노동의 연습이라 하면 어떠할까요. 그러면 우리의 지금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일평생 사업으로 여기고 노력하는 사업의 신성을 더럽히는 일이 없게 되겠지요. 그리고 자기가 생활에 대한 어떠한 기능을 얻게 되는 셈이겠지요.”

명호의 말이 끝나매 혜정은 빙그레 웃으며,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신성한 직업을 유희로 아는 것과 같은 모독은 없겠지요. 우리의 태도를 변호하는 말만이 물론 아니겠지요.”하였다.

명호도 따라 웃었다.

명호는 농촌으로 돌아오던 날부터 마음속에 여러 가지 갈등과 모순을 느끼었다. 이것은 자기의 일한 보수가 넉넉히 생활을 지탱치 못하고, 다만 부모의 약간 유산으로 그날을 지낸다 하면, 도리어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하여 일하는 직업의 신성한 것을 모독함이 아닌가 생각함이었다. 처음에는 자기가 농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 하였다. 농촌에 파묻히는 그것 보다도 자기에게는 적당한 다른 무엇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핼쑥한 살 밑에서 새파란 심줄이 줄기줄기 비치는 손을 들여다볼 때에 또는 아내의 고운 얼굴빛과 연약한 태도를 바라볼 때에, 그러한 느낌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리고 또 그 사상으로써 톨스토이의 참회 생활 가운데에 농부 노릇한 것과 또는 일본의 어떠한 장군이 농부를 모방하여 똥통을 매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직업을 유희시한 것이라 하여 위선이라 단정을 내린 자신으로, 이러한 모독을 다시 하게 된 것을 인생의 어떠한 보복이라 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이 사회에 대한 조그만 불평, 또는 여러 사람 가운데에 뜻을 얻지 못하였다는 실망 그것만으로 온 인생에 대한 자기의 인생관이 변하여, 이러한 농촌을 찾게 된 것은 냉정한 생각이 그를 에워쌀 때에는, 그러한 소극적인 행위를 그의 양심은 부인하였다. 그리고 또는 자신으로 ─ 어떠한 개념 생활에 열중하였던 그로서, 한편 호주머니에 폭탄을 넣고 다니는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한 것은 큰 유감이었다. 그의 천연의 유나(柔懦)한 성격이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는 항상 혼돈한 사회에서 몹시 자극받을 때에는 어떠한 테러리스트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극단이라 할 만한 은둔적 생활을 하는 것이 자신에 배태(胚胎)한 생명력을 신장시킴이라 하였다.

명호는 이 두 가지를 두고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 그는 T라는 남쪽 나라의 따뜻한 지방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하여는 처도 찬성하였었다. 이와 같이 테냐 퇴(退)냐 하는 갈림길에서 퇴를 취한 그로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의 직업 모독함이라 하는 데에서 그동안 오래괭이 잡기를 주저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하는 일은 장래에 생활을 얻으려고 미리부터 준비하여 두는 노동의 연습이라 하면 어떠할까요.
그러면 우리의 지금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이 일평생 사업으로 여기고 노력하는 사업의 신성을 더럽히는 일이 없게 되겠지요. 그리고 자기가 생활에 대한 어떠한 기능을 얻게 되는 셈이겠지요.”

어떠한 동기 혹은 인과에 의해 지금 나를 설명해야할 때가 있다.
그 원인이 의지와 능력이 부족해서일 경우 나도 모르게 핑계를 대고 만다.
내가 선택했지만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다면 강제와 무엇이 다를까.
그 강제되는 상황이 '나'라면 속이 터질 것이고, 세상이라면 억울하겠지만 어려움은 혼자만 오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적어도 나는 핑계를 댄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있을꺼야! 하고.


농촌에 파묻히는 그것 보다도 자기에게는 적당한 다른 무엇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핼쑥한 살 밑에서 새파란 심줄이 줄기줄기 비치는 손을 들여다볼 때에 또는 아내의 고운 얼굴빛과 연약한 태도를 바라볼 때에, 그러한 느낌이 더욱 간절하였다.


원하지 않았던 선택에는 항상 뒤에 숨어있을것만 같은 다른 의미가 담긴다. 막연한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지만, 때때로 믿음에 의심이 생긴다. 내 손에 있는 새파란 심줄이나, 아내의 연약함을 내가 보아버렸을 때처럼.


3

“나는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한 모험할 성격이 없는 것은 큰 유감이다. 명예와 공리만을 위하여 인간의 참생활에서 거리가 너무나 먼 단적 문제에만 구니(拘泥) 하는 이매망량(魑魅魍魎) 과는 언제까지든지 길을 같이할 수 없다. 나는 그러한 비열한 생활 수단을 취하여 사회적으로 성공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야심을 속이지 않고 진실한 내면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실패자가 됨을 도리어 기뻐한다.

나는 이 첫 시험을 다른 사람의 직업의 신성을 더럽혔다. 그러나 나는 내의 생을 개척하는 길은 다만 여기에 있음을 믿은 까닭에, 때의 늦음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가는 첫 연습을 하였다. 첫걸음을 배웠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영원히 우리의 시달린 영(靈)을 잠재워줄 것으로 믿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세상에 믿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 생활을 다시 핍박하는 그때가 오면, 나는 다시 이곳에 불을 놓고 밭을 헤뒤치고 논을 내버리고 표랑의 길을 떠나자! 그러할 때에 같이 갈 이 없으면, 나는 혼자 가자!

끝없는 곳으로. 그러다가 들 가운데에 거꾸러져 죽어도 좋고, 바다에 빠져도 좋다! 나는 그때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때를 도리어 반겨 맞이하자!

그때야말로 내외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줄 터이니까……. 그러나, 그러나 오늘의 흙냄새는 사향(麝香)보다도 더 향기로웠다. 나는 언제든지 그러한 흙냄새를 맡고 싶다……. 나는 비로소 흙의 세례를 받았다. 흙의 세례를 받았다.”


"나는 그러한 비열한 생활 수단을 취하여 사회적으로 성공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야심을 속이지 않고 진실한 내면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실패자가 됨을 도리어 기뻐한다."

희망과 믿음이 아닌 집착과 아쉬움으로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자리는 좁아지지만, 다음 걸음을 도무지 내딛지 않고 눌러앉는 이들이 있다.
명호는 사회적 실패자가 됨을 기뻐했다. 적어도, 이 부부의 입장에서는 농촌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더 삶에 진실된 행동이었기에.


"끝없는 곳으로. 그러다가 들 가운데에 거꾸러져 죽어도 좋고, 바다에 빠져도 좋다! 나는 그때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그때를 도리어 반겨 맞이하자!

그때야말로 내외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줄 터이니까……. 그러나, 그러나 오늘의 흙냄새는 사향(麝香)보다도 더 향기로웠다. 나는 언제든지 그러한 흙냄새를 맡고 싶다……. 나는 비로소 흙의 세례를 받았다. 흙의 세례를 받았다.”

그 때를 기다린다. 그 때가 올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 때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오늘 내가 밟는 향기로운 흙이 그 때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
명호는 흙의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구원의 순간을 맞이했다.


Fin

혜정은 신문을 한참 아무 말 없이 굽어보다가 남편을 불렀다.
이것 보세요 정숙이가 “ . 벌써 시집을 가서 훌륭한 가정의 주부가 될 모양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혜정은 신문을 자기 남편 앞으로 내놓았다. 명호는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S신문의 가정란에 서양식으로 꿈인 서재를 배경으로 삼고 박은 정의 부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기사에는 두 사람이 다 사회적으로 의의 있는 사업을 한다는 것이 조금 과장적으로 쓰였었다. 그리고 특별이 정숙은 여류 문학가라는 것을 기재하였다.
“벌써 정숙이가 사회에 명망 있는 여류 작가가 되었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근본이 다른 것이에요!”
“왜요?”
“정숙이는 저보다 나이도 어리지마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사람의 참속은 모르고 지내왔어요. 졸업한 뒤에는 물론 서로 그뿐이었지요.”
명호는 이와 같은 처의 말에는 어떠한 의욕이 이것을 말하게 한 것을 알았다. 그의 마음에도 아직도 자기 명망이란 것을 무엇보다도 좀 더 날리어 보자는 본능이 대단 굳센 것을 짐작하였다. 이것을 상상할 때에 명호의 마음을 점령한 고적은 그 두 동갑 되는 힘으로 그를 괴롭게 하였다. 명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혜정은 가만히 앉아 신문을 보다가,
“우리가 이대로 여기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아무 알 사람이 없겠지요. 이 동리 사람 외에는, 그리고 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겠지요? 그저 어떠한 늙은이와 늙은이가 살다가 죽었다고 하겠지요? 혹 자손이 생긴다면 그것들이 조금 섭섭한 생각을 하다가 얼마 지내면 그대로 잊어버리겠지요, 네?”
명호는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그들은 정신이나 육체에 한가지로 피로를 느끼었다. 어둠의 장막이 고적과 싸우는 두 혼을 덮었다.


흙의 세례로 구원을 받았다 생각했건만, 새로운 상황은 다시 이 부부를 흔든다. 나와 같은 위치에 있던 누군가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말이다.


"그들은 정신이나 육체에 한가지로 피로를 느끼었다. 어둠의 장막이 고적과 싸우는 두 혼을 덮었다."


구원은 받았으나, 그 구원을 끝까지 이뤄내기는 이토록 어렵다. 기쁨과 깨달음의 뒤에는 항상 실망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다. 진리를 알아도, 진리대로 살아가기는 참 어려운 것처럼.

부부는 무얼 깨달았을까, 마지막으로 보인 모습은 어둠이다. 어둠 안에 두 혼이 갖혀버렸다.

아마 다시 빛이 어둠을 가를 것이고, 어둠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기대하는 바는, 이 흔들리는 과정마저 그 때를 위한 준비였으면 한다.

그래서, 그 때를 보았으면 좋겠다. 이 날을 위한 준비였구나. 하며 슬며시 미소지을 수 있도록.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 오디오북을 구매한 후, 7권 정도를 들었다.

느낀점이 몇가지 있다.


1. 배우마다 편차가 있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유명한 배우가 읽어주는 소설은 대부분 듣기에 더 좋았다.

텍스트와 내용, 대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읽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2. 1인칭 소설일수록 듣기에 편하다.

3인칭 소설에 여러 등장인물에, 대화가 많으면, 한명이 나레이션에 여러 역할을 혼자 소화해야 한다.

물론, 일일이 역을 맡아 목소리를 다르게 할 것인가 까지도 배우의 몫일 것이다.(기획 단계에서 이 부분은 연출자가 도움을 주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래도 1인칭, 독백이 주로 된 소설일수록 듣기에 그리고 느끼기에 좋았다.


3. 텍스트가 없어서 아쉽다.

소설에 가슴을 때리는 부분이 있다. 한글자 한글자를 기억하고 싶은데, 듣고 적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보면서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 가삿말처럼 파일에 넣어주면 좋지 않을까. 어렵지는 않을 듯 하다.


전반적으로 만족이다. 우리나라 소설이 이처럼 훌륭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 하나 하나를 듣는다기보다, 근대를 살아간 여러 옛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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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읽으려는(들으려는) 마음과 집중력이 있으면 좋다. 라디오 틀어놓듯이, 아무생각 없이 흘려보내기엔 '글', 그리고 그를 읽는 '목소리'가 너무 귀하다. 

초대장 나눔합니다~

10장을 나눔합니다.


초대 조건은...

제 블로그 글 중, 하나 이상에 공감과 댓글을 부탁드려요~

그리고, 댓글로

1. 성함
2. 블로그를 하고 싶은 이유
3. 본인이 블로그를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4. 초대받으실 이메일 주소

를 이 글에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2018년 8월 5일(일)까지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중에서 10분께 초대장을 보내 드릴게요:)


초대장을 받으신 분들은, 

8/8(수)까지는 꼭 초대수락을 해 주세요!

초대장 방치는 원치 않아서, 수욜이 지나기까지 수락 안되어있으면 철회하겠습니다ㅠㅠ!

수락하신지 일주일 안에 꼭 첫 글을 써주세요~

일주일안에 시작 못하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쓰기 힘드니까요~


감사합니다:)

"아냐, 제롬. 이젠 늦었어.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늦었던 거야.

제롬, 네 덕택에 내 꿈은 인간적인 만족이 전락시킬 수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갔어."


앙드레 지드가 쓴 좁은 문을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중학교 때 이미 읽어보았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 다시 손에 쥐었다.


이미 유명한 명작을 보거나, 어릴적 보았던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그것이 영화이든 책이든) 깜짝 놀라곤 한다. 이런 의미였던가, 이런 책이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좁은 문도 마찬가지이다. 대체 내가 중학교 때 이 책을 이해나 하며 읽어내려갔을까 하는 것이었다.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 사랑한다.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이 있다. 이 두가지가 둘에게 다 있지만, 제롬은 인간적 사랑에 알리사는 신에 대한 사랑에 무게를 둔다.

제롬은 알리사를 사랑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알리사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제롬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에 방해물이 된다고 생각한다.


기억나는 한 문장은 알리사의 대사이다.


"아냐, 제롬. 이젠 늦었어.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을 추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늦었던 거야.

제롬, 네 덕택에 내 꿈은 인간적인 만족이 전락시킬 수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갔어."


맞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위해, 제롬과 알리사는 각자가 그 사랑 보다 더 훌륭한 것을 추구한다. 결국, 때는 늦고 사랑은 성취되지 못한다.

제롬과 알리사 중 누가 옳았을까. 신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 책에 있는 맥락 안에서는 제롬에게 손을 조금 더 들어주고 싶다.

사랑이, 신적 사랑과 인간적 사랑이라는 것으로 이원화될 수 있을까. 이미 그렇게 인식한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사랑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 그 자체이다.



소설을 한동안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다시 읽어야겠다.

오디오북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를 큰맘먹고 구매했다.

말그대로, 우리 문학을 100인의 배우분들이 하나씩 잡고 읽어준 오디오북이다.


책은 당연히 종이책이라고 생각했다. 질감, 냄새, 어쩌구 등등 책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적 단어들이 그 이유이다.

자유도가 높았던 어릴 때에는 종이책만으로 독서가 가능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유마저도 내것이 아니게 되었다. 뭔가 쓰다보니 슬픈데...ㅋ 구속은 책임을 의미한다.

혼자 좋을대로 살아가는 삶보다도, 함께 의미있게 살아가는 삶에 나는 더 가치를 둔다. 그러니 괜찮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유의 구속은 실물책을 항상 소지할 수 없게하고,

책을 읽고자 하는 시간에 갑자기 다른 일을 해야 하며,

빈손으로 있을 때에 갑자기 시간이 남는 등의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전자책으로 잠시 이동한 적이 있었다. 이미 유명한 '리디북스'를 이용해서 말이다.


나는 아직도 리디북스의 팬이다ㅋ 책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넘어가고만 싶은 상술은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상술이라 표현해 미안하다. 

건강한 욕구를 잘 생겨나게 해서 충족시키는 긍정적 상술이라 생각한다. 한때는 정기결재까지 해가며 책을 모았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내가 읽는 것보다 사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정기결재는 멈춘 상태이다.


전자책으로 옮겼는데... 조금 더 어른이 되었는지, 이제는 전자책 조차도 손에 잡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옮겨간 것이 오디오북이다. 옮겼다기보다는 리디북스 책들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대신 철수와 영희라는 남자 혹은 여자의 목소리로, 기계음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를 체험하며 이또한 신세계라 생각했다.

운전하면서 또한 단순작업을 하며 책을 읽을(들을) 수 있었으니.


그러다,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를 알게 되었다.

카카오 메이커스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알라딘을 통해 구매했다.

(난 알라딘도 좋아한다. 작가를 존중하는 건강한 유통망을 가진 책 회사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언젠가 쓸일이 있을까...)

언젠가 불법유통망에 퍼질 것 같다. 하지만, 하늘과 나 자신에 당당하도록 구매를 했다ㅋ


처음 배송받았을 때는 아래와 같다.


비닐포장을 벗겨내면, usb메모리가 꽃혀있는 아크릴판과 얇은 책자로 나뉘어진다.

책자에는 각 작품과 그를 읽은 배우의 사진과 설명이 간단히 되어 있다.

usb에는 mp3형태로 오디오북들이 한 파일씩 들어있다.

받자마다 아이폰에 옮겨넣었다. 음악 넣듯이 넣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온 가족에게 이 책을 공유하는것도 가능하겠다.


시험삼아 하나를 틀어보았다.

1. 배우의 인사

2. 작품의 시대적, 문학적 설명

3. 소설 읽기

요렇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아직 진득하게 들어보지는 않았다.

장거리 운전을 해야할 때, 단순작업을 해야할 때, 도저히 아무것도 능동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정신상태일 때, 들을 생각이다.

그런 때를 일부러 만들어야지 보다는, 이미 평소에 오디오북 형태를 많이 들어온 시점과 타이밍이 있다.

항상 그랬듯, 들을 생각이다.

다음주에 홀로 부산을 왕복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 때 들어봐야지..ㅋ


하지만..!

샘플로 풀려있는 최민식씨가 읽은 오발탄은 이미 들어보았다. 그를 통한 느낀점을 설명할까 한다.

배우가 읽는다. 이미 유명한, 혹은 얼굴을 보면 어떤 작품에 나왔는지는 알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이 읽어준다.

그 배우들이 작품을 읽어준다. 긴장감을 유지하며, 목소리도 흉내내며 말이다.

결국, 한 소설도 다른 배우가 읽는다면 그 결과물은 (당연한 소리를 또 하고 있다.)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ㅇㅇㅇ가 읽은 ㅇㅇㅇ의 ㅇㅇㅇ'가 제목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나와 같이 시간과 공간과 자유가 조금씩 좀먹어들어가고 있다면:)

그만큼 책임과 역할이 더해지는 삶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책을 다시 잡아보고 싶다면,

조금은 편한 방법으로 그 시작에 들어가고 싶다면,


오디오북을 추천하고 싶다:)

얼마를 들여서라도, 어떤 수고를 들여서라도 글쓰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넓게 볼 수 있는 모니터라든가, 손이 편한 키보드라든가, 나에게 맞는 글쓰기 툴을 찾는다든가 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 모든것이 갖춰진 나만의 방을 갖는 것까지도 해당된다.


그런데, 막상 그런 조건들을 갖추어가다 보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풋 하고 웃음이 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바로 마음의 평안이다.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든가,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든가, 내 마음이 막혀 안에 있는 것을 내놓지 못할 상태에서 무얼 할 수 있겠는가.

해소하거나, 다스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안에 있는 것들을 건강하게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난 결국, 오늘 산책을 나갔다 왔다. 한시간 정도 걸으니 머리와 마음이 정리되드라.

차분하게 앉아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차분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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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시 마포구에 산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내가 서울에 살게 되다니... 라는 말을 아직도 입에 붙이고 산다.

그중 마포구에 사는 것은 마음에 든다. 망원동도 좋았지만, 새로 이사온 연남동도(연남동에 매우 붙어있는 성산동이긴 하지만) 좋다.


제법 오래 전, 마포구립도서관이 생겼다. 부지선정이 어쩌내 저쩌내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사온 집에 가깝다.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며 벼르다 오늘 처음 방문하였다.

방문한 김에 회원카드를 발급하였고, 그냥 나오기 뭣해 책도 한권 대출했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고등학교 떄 읽었던 책인데, 무심코 집어서 빌렸다.

고전은 고전인 이유가 있다. 영화에서도 느끼지만 책에서도 느낀다. 예전 기억을 더듬으로 한번 더 그 문으로 들어가야지.


책은 집었지만, 도서관도 둘러보았다. 책 그리고 사람이 보인다. 도서관은 욕망과 욕구의 공간이다. 책과 공간과 사람이 더해지면, 무언가 깨달음과 성찰이라는 단어가 보일듯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좁은 자리에 빼곡이 책을 쌓아놓고 노트북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빈 자리에 채워넣는다. 미래를 향한 열망과 현재의 욕구를 함께 채우는 듯 하다. 저기 구석진 자리에는 연인인듯 보이는, 연인이 아니라면 더 이상해 보이는 두 남녀가 앉아 책을 펴놓고 서로의 옆구리를 찌른다. 옆구리를 찌르러 온 것이라면 오늘의 시간은 의미가 있을 것이고, 공부를 하러 왔다면 버려진 시간일 것이다. 그 와중에 나는 어떨까. 솔직히, 나는 정신이 나갔다. 오랜만에 오는 도서관이기에, 생각없이 분류와 책 제목을 한권한권 훑어가며 이건 읽었지, 이건 보고싶은데, 이건 안읽었지만 뭔진 알지, 이건 처음보네. 이러면서 제목을 훑고 그를 통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황홀경에 빠지는 듯한 느낌을 가진 시간이었다. 다시 확인한 것은, 책의 제목들을 훑어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안정이 되고 가슴이 두근댄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난 아직 멀었다. 


요즘들어, 언젠가부터 몸이 좀 안좋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서 잠시 자다가 스멀스멀 일어나니 아내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아 잠시 몸을 담갔다. 몸이 따뜻해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목욕탕 같이 울림이 있는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다 보면, 공간과 소리가 공명되는 지점이 있다. 어떤 지점일지 읽는이가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목욕탕에서 이런 저런 소리를 내 보는데, 맘에 드는 소리를 찾은 순간이다. 첫 소리부터 그 지점과 만나기는 어렵다. 이렇게도 내보고 저렇게도 내보고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가 구애받지 않고 목소리를 찾다보면 어느새 그 지점에 가 있다. 그럼에도, 비교적 쉽게 그 지점으로 다다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내가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는 그렇다 치자. 만약, 누군가가 함께 이 울림이 있는 공간 안에 있다면 어떨까. 각자의 지점을 찾고, 다시 또 함께 할 지점을 따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소리내는 것이 좋아서 흥얼거리다가 문득, 내 목소리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워내야 하지만,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옳은 소리일지, 맞는 소리일지, 아름다운 소리일지 자신이 없다. 이래저래 소리를 내보면 곧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주변 큰 목소리에 묻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내 목소리는 점점 묻혀지고, 잊혀진다.


나는 고삼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놀랍거나 심각한 고백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일이 조금 일찍 발생한 것이니. 물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남들이 다 갖고 있는 수많은 아픔 중 하나이지만, 짐작하기 어려운 형태의 아픔이 있었다. 이 때도, 나는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나보다. 누군가에게 솔직해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나의 아픔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들어주는 사람, 듣지 않는 사람이다. 들어주는 사람은 말 그대로이다. 솔루션을 내지는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고, 빈잔을 채워준다. 공감에 공명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의 공간 안에서 평온하다. 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은 내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정도의 아픔은 뭔지 안다며, 듣지 않아도 뻔하다며, 자신이 아는 범주 안에 나를 우겨넣는다. 그리곤, 나의 약함에 대해 말한다. 아직 어리다. 연약하다. 강해져야 한다. 쓸데없는 감정이다. 나는 입을 닫는다.

나중에 알고보면, 듣지 않는 사람들은 놀라운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이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픔을 겪거나, 남을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산 사람들이 많았다. 항상 자신의 목소리를 내 왔기에, 내 목소리만 들렸기에, 그것이 옳은 목소리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소리를 듣고싶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다시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크고 좋은 소리를 가졌다.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노래하고 싶지는 않다. 그 공간에는 들어가기도 싫다. 나도, 때로는 듣는 것을 넘어 함께 노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소리를 가진 사람보다는, 내 목소리에 공명해주며 함께 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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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올리고 보니... 커피인지 사약인지 구분할 길이 없어 보인다.

무얼 찍으려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오늘의 커피는 '카뮤블렌드' + 케맥스이다. 카뮤는 '카페뮤제오'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하면, 커피전문 온라인 쇼핑몰이다. 오프라인 매장도 있는데, 예전에 우연한 기회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방문시 느낌이 매우 좋았는데, 단순히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름처럼 커피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설명해줬던 매니저분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종종 이용하는데, 후기라든가 내부에서 답을 달아주는 것들이 아주 친절하고 재미있다.

카뮤블렌드는 이 카뮤에서 블렌딩해서 낸 원두이다. 드립페이퍼를 샀더니 시음용 50g을 보내주었다.

누군가 내게 어느 커피가 제일 맛있냐고 물어보았는데, 토요일 오전 10시에 마시는 커피라고 답한 적이 있다. 시간과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그것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에 오랜만에 맛보는 산뜻한 산미가 있었다. 특별히 맛있다 라기보다, 계속 마셔도 좋을 맛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생각이다'를 적는 시점에 커피를 거의 다 마셨는데, 한번 더 내려마실까 하는 고민이 계속 든다.)





커피를 내려마실때면 생각나는 시간이 있다. 꿈꾸던 공간과 시간. 누구나 그런 곳을 찾겠지, 나도 그 중 한명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에, 편안한 의자에 앉아있다. 흐르는 음악 위는 커피 향으로 메우고, 내 손에는 책이 들려 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생각을 놓쳐도 그 빈 부분을 음악 혹은, 향, 맛, 분위기로 메꿀 수 있는 그런 공간. 언제든 다시 책으로 돌아가도 또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시간. 기계적으로 생각해보면, 음악+커피+책+의자라는 공식만 따르면 된다. 그런 것들이 갖춰지면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 아니 기대한다.

이년 전인가... 이 분위기를 만들려다가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ㅋ 먼저... 자리를 세팅해놔야 하고 음악을 틀어놓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어떤 음악을 틀지 리스트업을 해놔야 한다. 커피도 내려야 했다. 당시에는 드립을 할 줄 몰라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리고 나니 설거지를 해야 했다. 결국, 책은 못읽고 분위기 만드는 노력만 들이고 끝났던 기억이 났다.

요즘은, 조금 자유로워진 편이다.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으면 된다. 커피 내리는 과정도 즐겁다. 원두를 고르고, 드리퍼를 고르고, 내린다. 고민하는 시간과 내리는 시간 과정, 어떤때는 귀찮지만, 대부분은 그 시간 자체가 좋다.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을, 아니면 끌리는 것을 들고, 아무 곳에나 앉는다. 침대도 좋고 의자도 좋다. 음악은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다. 틀고싶으면 틀면 된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이러다가 아내가 여보~ 부르면 내려가야 하겠지만ㅋ

대부분의 우리는 추상적 미래를 꿈꾼다. 갖지 못한 것을 기대한다. 그 미래라는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나도 모르게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그 체크리스트를 다 채우고 나도 허무한 이유는 그 시간동안 내가 꿈꾸던 기대와 조금 더 멀어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허나, 가끔씩은 느낀다. 삶의 목적과 수단이 일치되는 때가 지금 이순간임을 느낄 때, 다른 것들은 아무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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