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도망치고 싶을 때 읽는 책, 이시하라 가즈코

다시 써본 부제 :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인정하라!

동기

책은 제목으로만 골랐다. 요즘 유행하는 퇴사 시리즈라든가, 괜찮아 시리즈들이 있다. 광고나 기타 매체에서 이 책은 몇번 스쳐가듯 본적이 있다. 작가도 후기도 읽지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한번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절망이야 다 끝이야 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인지하는 단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잡게 되었다. 그럴 떄 읽는 책이라고 제목에 써있으니 말이다.

마포중앙도서관에는 누가 대출해갔길래, 상호대차라는 놀라운 시스템을 이용해 책을 빌려보았다.

내용

내용을 한줄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라' 라고 쓰고 싶다.

보통의 우리는 타인중심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눈치를 보고, 나의 감정보다는 남의 의견을 더 우위에 두었다. 물론, 머리로는 내 감정을 소중히 해야함을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자존심도 있고, 두려움도 있어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거나 상담 비스무리한것을 하면(내 주제에),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로 뱅뱅 도는 경우가 많다.

당장 생각나는 예는 연애문제이다. 우리 집 상황이 안좋다. 상대방 집 상황도 안좋다. 그런데 내 상황은 이렇고, 상대방은 이런거 같다. 상대방의 말을 논리적으로 끼워맞추어 결론을 도출해 보면 결국 가장 합리적인 답은 이별이라는 답에 도달한다. 그런데, 헤어지고 싶냐라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란다. 계속 또 상황과 주변머리만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한 경우는 아니겠지만,

"'헤어지고 싶어'가 솔직한 내 마음이야.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진 않아. 왜냐면, 주변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겠어? 그리고 난 그렇게 나쁜놈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도망치고 싶다.' 이 마음은 결론이면서 시작이다. '도망치고 싶어'라고 솔직히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이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소수일까. 많은 이들이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품지만,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이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계속해서 풀리지 않고 쌓이고 꼬여갈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실패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그 마음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그런 상태가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ok다. 허나, 혹시나 그렇다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외면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음을 인지하고 내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인 것이다. 그 해결법은 꼭 도망이나 포기가 아닐 수 있다.

결론

내 경우에는 책을 잡기 전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을 사실 인지하고 인정했다. 어느 순간 알게되었다. 아닐거라고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맞았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것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조금의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집었다. 책을 빌릴 때, 이런 제목의 책을 빌려줄 때 사서가 나를 보며 한심한 듯 생각을 하진 않을까 조금 염려한 것은 안 비밀이다.

책에서는 여러 기술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거절하는 법이라든가, 이런 기분이 들 때 어쩌해야한다든가 말이다. 여러 말을 하지만 핵심은 '인정하라, 그러면 시작될 것이다.'이다.

책은 술술 읽힌다. 심지어 종이도 두꺼워서 두께도 금방 줄어든다.

엄청난 교훈이나 처세술이 담겨있지는 않다. 우리가 기대하며 펴든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러하듯 말이다. 혹시나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듦을 스스로가 인정했다면,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다. ''당신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이 책을 손에 잡은 당신은 제법 용기가 있는 사람이에요." 라고 책의 저자가 말을 건넬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를 찾아가거나 책을 잡는다.

사람과 마주할 때는 두 경우가 있다. 답답하거나 시원하거나. 나를 읽고 명확한 답을 하거나, 자신도 무슨 소리를 하지 모른 채로 말을 끼워맞출 때이다.

책은 한 가지이다. 생각. 내 생각에 맞든 틀리든 생각하게 한다. 주장이 있고 근거가 있으면, 자신의 것을 이야기할 뿐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나를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맞겠지만, 가끔은 책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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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올리고 보니... 커피인지 사약인지 구분할 길이 없어 보인다.

무얼 찍으려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오늘의 커피는 '카뮤블렌드' + 케맥스이다. 카뮤는 '카페뮤제오'의 줄임말이다. 쉽게 말하면, 커피전문 온라인 쇼핑몰이다. 오프라인 매장도 있는데, 예전에 우연한 기회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방문시 느낌이 매우 좋았는데, 단순히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름처럼 커피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설명해줬던 매니저분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도 종종 이용하는데, 후기라든가 내부에서 답을 달아주는 것들이 아주 친절하고 재미있다.

카뮤블렌드는 이 카뮤에서 블렌딩해서 낸 원두이다. 드립페이퍼를 샀더니 시음용 50g을 보내주었다.

누군가 내게 어느 커피가 제일 맛있냐고 물어보았는데, 토요일 오전 10시에 마시는 커피라고 답한 적이 있다. 시간과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그것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에 오랜만에 맛보는 산뜻한 산미가 있었다. 특별히 맛있다 라기보다, 계속 마셔도 좋을 맛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생각이다'를 적는 시점에 커피를 거의 다 마셨는데, 한번 더 내려마실까 하는 고민이 계속 든다.)





커피를 내려마실때면 생각나는 시간이 있다. 꿈꾸던 공간과 시간. 누구나 그런 곳을 찾겠지, 나도 그 중 한명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에, 편안한 의자에 앉아있다. 흐르는 음악 위는 커피 향으로 메우고, 내 손에는 책이 들려 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생각을 놓쳐도 그 빈 부분을 음악 혹은, 향, 맛, 분위기로 메꿀 수 있는 그런 공간. 언제든 다시 책으로 돌아가도 또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시간. 기계적으로 생각해보면, 음악+커피+책+의자라는 공식만 따르면 된다. 그런 것들이 갖춰지면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 아니 기대한다.

이년 전인가... 이 분위기를 만들려다가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ㅋ 먼저... 자리를 세팅해놔야 하고 음악을 틀어놓아야 한다. 생각해보니 어떤 음악을 틀지 리스트업을 해놔야 한다. 커피도 내려야 했다. 당시에는 드립을 할 줄 몰라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리고 나니 설거지를 해야 했다. 결국, 책은 못읽고 분위기 만드는 노력만 들이고 끝났던 기억이 났다.

요즘은, 조금 자유로워진 편이다.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으면 된다. 커피 내리는 과정도 즐겁다. 원두를 고르고, 드리퍼를 고르고, 내린다. 고민하는 시간과 내리는 시간 과정, 어떤때는 귀찮지만, 대부분은 그 시간 자체가 좋다.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을, 아니면 끌리는 것을 들고, 아무 곳에나 앉는다. 침대도 좋고 의자도 좋다. 음악은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다. 틀고싶으면 틀면 된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이러다가 아내가 여보~ 부르면 내려가야 하겠지만ㅋ

대부분의 우리는 추상적 미래를 꿈꾼다. 갖지 못한 것을 기대한다. 그 미래라는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나도 모르게 체크리스트를 만든다. 그 체크리스트를 다 채우고 나도 허무한 이유는 그 시간동안 내가 꿈꾸던 기대와 조금 더 멀어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허나, 가끔씩은 느낀다. 삶의 목적과 수단이 일치되는 때가 지금 이순간임을 느낄 때, 다른 것들은 아무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시기, 나도 빗겨가지 않았던 그 시절. 품었던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시간여행이 가능할까? 많은 영화와 소설에 소재로 등장하지만, 정말 가능할까? 그 용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정말 가능할까? 그저 그게 궁금했다.

 그때 알게된 책이  ‘시간의 역사’이다.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의 매개인 ‘에테르’라는 개념에 대해 알았을 때에는 내 손을 비추는 빛이 보였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이 빛이며,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물론, 가상의 물질이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다 중2때의 지식이다. 지금은 죽은 지식일 수 있다.

 차원에 대한 개념도 생겼다. 상투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 높은 차원이라고 하는, 쟤는 사차원이라고 하는 그 말들. 왜 그런 말들이 생기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쓰고 있는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왜 생겨났는지 말이다. 점, 선, 면이 1,2,3차원이 되며 우리가 사는 세계는 3차원이라는 것. 시간의 축을 더하면 4차원이 된다는 것. 그 사차원은 우리가 경험해보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차원이다. 인터스텔라를 보고 놀란 이유는 그 차원을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여행은 가능한 것인가? 결론은 불가능하다. 단, 과거를 볼 수는 있다. 빛은 없어지지 않는다. 과거에 비춘 빛은 사라지지만, 빛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면 지나간 빛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이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릴 경우 신체가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빛의 속도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무한대로 필요한데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공식 E=MC²가 그 의미이다. 에너지=질량*빛의 속도² 과 같은데, 결국 이 등식을 만족하는 에너지 값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도 중2때의 지식이다. 지금은 죽은 지식일 수 있다. 

 이외에도 시간여행에는 웜홀 외에 다른 가설과 이론들이 있다. 단순히 천체물리할 뿐만 아니라, 인과율이라든가 여러 개념과 사고가 들어가는 논의이다.


 아무 생각도 없이 글을 써내려갔다. 재밌게 썼다. 아는 내용이고, 사실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하라면 계속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전문가는 아니니 상식과 교양 선에서 말이다.

 '시간의 역사'는 고마운 책이다. 그 책을 저술한 스티븐 호킹은 고마운 사람이다. 우주에 대해 그 사람이 얼마만큼 큰 업적을 이뤘고, 인류사에 얼마나 큰 사람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할 수도 없다. 고마운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다. 학교 과학시간에 배우지도 않는 것을 궁금해 했을 때에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 선생님에 이 질문을 들고 갔을 때에 돌아오는 것은 답변이 아닌 이상한 시선과 귀찮음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네'라고 눈빛과 태도가 내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도 몰랐을 것이다. 그럼 모른다고 하면 될 것을 그런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들고 경제 선생님께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상한 아이였다. 이상한 것을 궁금해하는 아이였다. 그런 나는 '시간의 역사'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궁금해 할 수 있는 질문이구나, 이런 것을 답해놓은 사람이 있구나,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그런 위로였다. 새로운 지식을 알게되어서가 아니라, 남이 모르는 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받은 위로 때문에 '시간의 역사'를 읽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어느 책에서 죽은자에 대한 최고의 배려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라 했다. 스티븐 호킹이 지구별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그냥 기억하고 싶었다. 추억하고 싶었다.

가끔 알라딘 중고서점에 간다.

사고싶은 책이 있을 때도 가지만, 사람들이 판매한 책 제목들을 보러도 간다.

책 제목들을 훑던 중, 한 젊은 친구 둘의 대화를 들었다. 페이퍼백 재질로 된 외국서적을 들고 하는 말이었다.
“우리나라 책도 이렇게 가볍게 만들면 좋겠다. 우리나라 책은 무거워서 자기 전에 읽기가 힘들다.”
자기 전에 항상 책을 읽을만큼 독서에 열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자책도 종이책도 좋아한다. 질감과 경험은 종이책이 좋지만,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데에는 무게 제약이 있으니 전자책을 선호한다. 전자책을 우선으로 하되, 구할수 없는 것은 종이책으로 산다. 전자책을 선호하는 필수요인중 하나는 값이 더 저렴해서이다.

이야기가 샜지만, 결국 사용자 경험 문제이다. 편리한가 아니한가. 그런데, 사용자 경험이 어쨋고 저쨋고를 떠나서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읽는 것’이다. 무게와 형태를 떠나,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읽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에서 가르침이 아닌 배움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 것과 같다. 책의 본질은 무엇보다 읽는 것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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